갑작스런 중고생들의 거리 진출에 대해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직까지 이런 규모로 아이들이 사회에 진출한 적은 없었기에 이것은 일찍이 우리 사회에서 드문 일이고 적잖이 놀라운 일임에 분명하다.

현장에 가보면 알겠지만 촛불문화제 참석자의 절반 이상이 중고생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들이 선동과 유언비어에 움직인다고 주장하지만 이들이 단상에서 발언하는 내용을 들어보면 그들의 논리는 아주 분명하다.

사실 오히려 집회를 이끌고 있는 건 중고등학생들이다. 어른들이 오히려 아이들에게 선동당하고 있다. (나를 포함해 나이 좀 있는 사람들 이 대목에서 부끄러워 해야한다.)

그들은 교육자율화, 대학등록금, 영어몰입교육, 우열반 편성 등 자신들이 처한 교육 환경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미국산 소고기와 광우병의 상관관계를 잘 알고 있으며 대운하와 수도 민영화와 의료보험법 개정이 무슨 의미인지 그들은 정말로 똑똑하게 이명박 정부가 그 동안 무슨 일을 해왔는지를 잘 알고 있다.

촛불문화제에서 아이들이 하는 얘기를 한번 들어보라. 그들은 자신들이 배운 민주주의의 기초  즉 다수 국민의 뜻을 따르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으며 왜 자신들이 배운 것과 정치권이 하는 것이 틀리냐고 지적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배웠습니다. 저도 국민의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집회를 불법으로 규정하십니까? 나도 국민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일까? 도대체 아이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사회에 관심이 많아졌을까?


나는 크게 3가지 이유를 뽑는다.

첫번째 : 세대론
이들은 지금까지 한국사회에서 가정에서의 억압, 교육현장에서의 억압, 사회 구조적인 억압에서 가장 덜 노출된 세대이다. 사실상 이전 세대가 피흘려가면 만들어낸 민주화의 혜택 속에서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가장 덜 권위적으로 자란 세대들이다. (물론 아직도 많은 학교는 아직 권위적이긴 하지만...) 또한 월드컵 축제를 초등학교 때 경험한 월드컵 세대들이기도 하다. 

어떤 분은 이 세대가 '자기 몸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첫번째 세대라고 한다. 즉 자기 몸과 자기 자신 그리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개인적인 욕망을 가진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단상에 올라온 아이들은

'나 죽기 싫어요'
'나는 커서 훈남 만나서 천년 만년 잘 살고 싶어요'
'우리도 나중에 클럽도 가고 부킹도 해야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 것도 누려보기 전에 왜 우리를 병들게 하려고 합니까?'

라는 발언들을 자유롭게 말한다. 물론 이런 발언들은 거기 모인 또 다른 학생들의 열렬한 호응을 일으킨다.


두번째 : 네트워킹
요즘 아이들이 숙제를 하는 방법이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네이버 지식검색과 네이트온을 켜놓고 숙제를 한단다.

예전의 정보는 외우는 것이 주된 것이었다면 이제 정보는 찾는 것이 중요해진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찾은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들은  지식을 습득하는데 있어 네트워크를 가장 기본적인 활동으로 삼고 있다. 이것이 이전 세대들이 학습하던 습관과 달라지는 점이다.

기존에 공부는 달달 외우는 것이었다. 심지어 수학도 외워서 푸는 방식으로 배운다. 그런데 이들은 외우는 것 이외에 정보를 찾고 조합하는 일들을 한다. 외우는 지식에서 찾는 지식, 찾은 지식을 공유하고 재조합하는 것...

사실 이미 정보가 엄청나게 쌓여있는 마당에 네트워크에 접속만 하면 정보를 알 수 있는 마당에 외우는 능력이 뭐가 그리 중요할까? 인터넷 시대에 필요한 능력은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찾고 조합하고 필요할 때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리고 이들은 검색과 메신저를 사용하여 자연스럽게 이런 습관을 가지게 된 세대들이다.

정보를 찾는 것뿐만 아니라 공유하는 일에서도 이들은 탁월하다. 이들은 어떤 소식을 들으면 문자로 쪽지로 순식간에 공유한다. 게시판에 펌질을 하고, 친구들과 지인들과 공유한다. 정보의 공유에 있어서는 이전의 어떤 세대들보다 빠르다. 그리고 그렇게 공유된 정보는, 필요한 경우 공동의 행동으로 연결된다.

"너도 나가니? 나도 간다..."

사회 행동을 하는데 있어 혼자는 아무래도 두렵다. 이들은 네트워킹을 통해 자신들이 혼자가 아님을 안다. 친구들과 친구의 친구들과 그 친구의 친구의 친구들이 함께 행동할 것을 순식간에 공유하고 나면, 혼자 행동해야한다는 두려움 따위는 생길 이유가 없다.

아이들은 개인적이고 고립되어 있는 것 같지만 또 다른 면에서는 고도로 네트워크화되어 있다. 그리고 이 네트워크가 아이들을 공동행동으로 이끈다.


세번째 : 정보량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습득하는 정보량이 성인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 10년전만 하더라도 신문을 읽거나 뉴스를 접하는 학생들은 많지 않았다. 신문을 보는 가정도 많지 않았고, 학생이 뉴스를 보고 있을 시간도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학교라는 제도가 아이들을 사회로부터 격리시켰고, 아이들은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커리큘럼 이외의 정보를 습득할 방법이 거의 없었다. 조금 다른 환경을 가진 아주 소수의 아이들을 제외하고 말이다.

그런데 이제 아이들은 인터넷을 통해 온갖 소식을 접할 수 있다. 자신들과 관계 있는 신문기사, 뉴스는 즉시 반 아이들과 공유해서 읽을 수도 있다. 즉 적어도 이들은 이전 세대의 중고등학생들과 같이 학교 외부의 정보, 사회에 대한 정보로부터 차단되지 않은 아이들이다.

비슷한 정보량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들이 성인과 별로 차이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니 오히려, 신문이나 뉴스를 거의 보지 않는 다수의 어른들과 조중동에서만 정보를 얻는 어른들과 비교하면 이들의 정보 습득량이 훨씬 많다.

이러한 특성은 원시사회를 돌이켜보면 훨씬 잘 이해된다.
원시사회에서는 지금의 중고등학생들과 비슷한 나이인 15-16세에 성인식을 했는데 성인식을 한 후에는 어른과 똑같은 대접을 해 주었다. 심지어는 12-13세에 성인식을 하는 부족도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 조선시대까지 한국에서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15-16세가 되면 결혼을 할 수 있었고, 결혼을 하고 나면 어른으로 활동하는 것이다. 즉 그 정도 나이면 부족 안에서 어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그 공동체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경제활동에 참여하거나 결혼과 아이로 부족 구성원을 재생산하거나 하는 어른들의 활동 말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그들은 삶과 학습이 분리되어 않았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부족이라는 작은 공동체 안에서 가족과 공동체 구성원들이 거의 매일 접촉을 하며 살았는데, 이런 사회구조는 그 공동체 내부에서 발생하는 거의 모든 일들을 전체 구성원이 공유하게 만든다. 학교라는 공간이 없이 공동체 내부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15-16년 동안 어른들이 하는 일을 그대로 보고 따라서 배운다. 일상이 배움이고 놀이이고 어른들 따라하기이고, 공동체의 어떤 의례, 규칙, 삶의 방식을 배우는 공간이다. 그들은 공동체 안에서 10여년을 배우지 않으면서 배운다.

즉 그 부족의 생존에 필요한 각종 정보들을 일상에서 매일 습득했기 때문에 다시 말하면 자신들의 사회에 대해서 어른들과 비슷한 정보량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나이가 되면 어른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근대사회에 들어와서는 이것이 확연하게 달라지는데 그것은 근대사회는 아이들을 학교라는 공간에서 사회와 고립시켜 길러왔기 때문이다. 즉 아이들은 교과서에 나오는 커리큘럼만 배울 뿐 그 이외 사회에 대한 정보는 접할 방법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인터넷에 들어오면서는 사정이 달라진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원하기만 하면 어른들과 동등한 수준의 정보를 습득할 수 있다. 특히 기존에 알려진 정보가 많지 않은 광우병과 경우, 매일 새로운 정보가 쏟아지는 사안에 대해서는 어른과 아이들의 정보량 차이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차이라고 한다면 삶의 경험으로서만 축적될 수 있는 종류의 지식, 지혜 혹은 지나온 세월 동안의 역사적인 흐름에 대한 인식, 사회생활에서의 좋은 혹은 좋지 않은 경험... 이런  정도가 차이가 날까?

즉 인터넷이 사회의 중추적인 커뮤니케이션 매개체 역할을 하는 지금의 사회에서 사회의 어떤 영역들은 원시사회에서 아이들이 그 공동체의 모든 정보를 어른들과 동등한 수준으로 접하는 바로 그런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들을 어른보다 못한 ‘아이’라고 보는 순간 우리는 심각한 혼란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들의 사회적인 진출은 이미 몇가지 사건으로 예견되어 있었다. 이들이 스스로 문제제기하고 조직해서 만들어낸 두발 자유화 시위가 그 한 사례이다.

또한 자신들이 좋아하는 '오빠'들이 기획사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을 보고 자신들이 직접 연계기획사를 차려 오빠들을 빼내오겠다고 했다가 급기가 그 회사의 주식을 사서 아예 회사를 인수하려고 시도를 했던 사건 역시 무시할 수 없는 한 사례이다.

특히 두 번째 방법은 예전의 아이들이라면 생각할 수도 없었던 방법이다. 아니, 오히려 어른들의 상상력을 뛰어넘는다. 그들은 어른들의 상상력이 미치지 못하는 방법으로 세상에 진출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그들을 ‘아이들’가 아닌 다른 시각으로, 동등한 개체로 보아야 한다. 중고등학생들을 예전과 같은 아이로 보는 순간 아이들은 아마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가 아직도 애들로 보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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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07 08:33 2008/05/07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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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인구피라미드로 보는 지금의 10대 중고딩 세대

    Tracked from 작도닷넷 2008/05/11 21:41  삭제

  2. Subject: 10대들에게 보내는 박수

    Tracked from 시리니 2008/05/12 01:57  삭제

    여태까지 군인 신분이라는 제약으로 하고픈 말이 있어도 본의 아니게 참았었습니다. 뭐... 군인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지요. 그래서 본의는 아니었지만 어리석게도 저는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이제서야 민간인의 신분이 된 이 때, 광우병 파동으로 정의롭게 분노하고 있는 우리 후배들, 10대들에게 이제는 대학생으로서 정말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어르신들은 말씀하십니다. 그런 거 할 시간에 공부나 더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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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ifepen 2008/05/07 16: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00% 동의!

    다중(多衆)이 내리는 결정이나 행동이 완벽하냐, 완벽하지 않느냐가 판단기준이 아니라, 다중이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에 대해서 책임을 질수 있을때까지 학습할수 있도록 보장할수 있느냐 없느냐가

    한 사회의 성숙도를 결정하게 되는 시대가 오고 있어요. 설령 그 다중들이 어린 다중이라고 해도 말이죠.

  2. nullvana 2008/05/27 21: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왜 이제서야 이 블로그를 발견했을까요.
    하루동안 글들보면서 놀아야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