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간 아프리카에 대한 어떤 형태의 압력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것이 사장 구속까지일지는 예상치 못했습니다.
워낙 아프리카의 파급력이 크기에 한번쯤은 제스춰를 위하든
말로 협박을 하든 혹은 건드리는 정도의 압력은 있을 거라 예상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선택한 방식은 조금 충격적인 방식입니다.
그것은 정부가 산업에 직접 손을 대겠다는 의미인데,
이런 방식은 딱 10년, 아니 10년전보다 훨씬 더 후퇴한
전두환 시절로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10년간 아주 깨끗하지는 않았겠지만 정부와 산업계는
나름대로의 룰을 만들어 왔습니다.
분식회계 같은 것들에 대해 철저하게 대응하고
재벌 같은 경우는 지주회사 체계로 가면서
구조적으로 뇌물이 오가는 시스템도 바꾸었고
전체는 아니지만 꽤 많은 부분에서 산업은 산업 나름대로의 논리로
갈 수 있는 토대들이 만들어진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하는 일은 그 전체를 뒤집는 일입니다.
이대로라면 아마 조만간 '다음'에도 손을 댈 것 같습니다.
방식이야 여러가지가 있겠죠.
인터넷 산업이 원래 경계를 오고가는 산업입니다.
즉 기존의 법률을 위반하거나 깰 가능성이 아주 큰 산업이라는 거지요.
그런 측면에서 걸면 걸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어떤 구실을 찾는 건 아주 쉬운 겁니다.
하다못해 사소한 초상권도 다 걸면 걸 수 있는 사안이지요.
이명박 정부가 거기에 손을 댔다는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아주 큰 것입니다.
인터넷 업계에서 위법의 소지가 있는 대부분의 업체들은
이제 정부의 눈치를 보게 될 겁니다.
P2P 서비스나 웹하드 서비스뿐만 아니라
다음과 같은 포털도 예외가 아니지요.
왜냐하면 이제 언제든지 대표의 구속 같은 조치가 가능하다는 것이
확인되었으니까 말입니다.
이 조취의 효과는 분명 있을 겁니다.
어떤 업체들은 알아서 기겠죠.
그렇다고 그게 오래 가지는 않을 겁니다.
권력누수현상이 본격화될 때,
보수층이 드디어 이명박을 버리기 시작할 때
이 업체들은 어떤 입장을 취하게 될까요?
결국 싸움의 전선은 시민-정부의 축에 더하여
(일부)인터넷 미디어 업체 - 정부의 축으로까지 확대되었습니다.
사장 구속 직후 나온 나우콤의 성명서는 인터넷 기업들이 살기 위해서라도
어쩔 수없이 반이명박 정서를 가질 수밖에 없음을 잘 보여줍니다.
(클릭 : 나우콤 문용식 대표이사 구속영장 발부에 대한 나우콤의 입장)
'다음'은 그냥 둘까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그러면 그 다음은?
신문에 언급되는 것처럼 인터넷 여론 전반에 재갈을 물리려고 하겠죠.
이런 행위들은 트래픽으로 먹고사는 인터넷 서비스 업체들 전체를
옥죄는 행위가 될 것입니다.
더 많은 적이 만들어졌고 대치선은 더 넓어졌습니다.
한번 전세가 꺾였을 때 싸움은 걷잡을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어느 순간 터지는 전면전이 훨씬 거 격할 것이란 의미입니다.
결국 이 촛불을 든 싸움은 이명박이 살기 위해 버티느냐
국민들이 살기 위해 버티느냐의 싸움으로 되어버렸습니다.
둘 사이에 타협의 여지는 없다는 겁니다.
즉 누구 하나가 져야 끝나는 싸움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진 것이지요.
저는 결과에 대해 비관하지 않습니다.
이미 여러번 확인되었듯 국민들 내부의 역량이 임계치를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다만... 어쩔 수 없이 어느 시간이 지나면 싸움이 전면전으로 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격한 흐름 속에서 다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명박'에 해당되는 글 6건
- 2008/06/17 블로초 아프리카 TV 문용식 사장 구속의 의미 (5)
- 2008/06/12 블로초 상상력이 해방되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 2008/06/08 블로초 [명박퇴진] 신종 알바 퇴출법
- 2008/06/05 블로초 이제는 직접민주주의다!
- 2008/05/16 블로초 소년이여, MB 입 좀 막아라 (Boys, be MB shuts)
- 2008/05/07 블로초 중고생의 반란 - 내가 아직도 애들로 보이니? (2)
"모든 권력을 상상력에게"
"All power to the Imagination"이라는 이 생소한 구호는
프랑스에서 시작되어 세계사를 뒤흔들었던 68 혁명을 대표하는 문구이다.
아무리 봐도 비문스러운 이 문구가 바로 한국에서 재현되고 있다.
자신을 표현하는 기발한 복장들
엄숙함 보다는 웃음을 자아내는 그 수많은 플랭카드들.
권력 앞에 선 비장함을 비틀어버려 우습게 만들어버리는 문구들.
경찰에서 컨테이너를 쌓았을 때 과연 저 높이에 버금가는 연단이 만들어지리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그들이 1단이 아닌 2단을 선택한 것은 그 높이에는 근접할 수 없으리라는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장벽을 아주 쉽게 밟고 넘어갈 수 있는 그런 계단을 만들어놓고도 그 벽을 넘지 않고 평화롭게 집회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상상이나 했을까?
지금의 시위는 말 그대로 상상력의 해방이다.
수백명이 달려들어 버스를 끌어내던 그 밧줄
물대포에 대항하기 위해 가져온 물총
개인이 휴대할 수 있는 작은 확성기
수킬로미터를 이어서 만들어진 촛불로 만들어진 길
이것은 개인들의 상상력이 해방되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 상상력에 놀라고 상상력이 새로운 상상력을 낳고
상상력이 주는 재미가 다시 사람을 부른다.
폭력이 아니라 상상력!
그것이 지금 광화문의 촛불을 이끌고 있다.
(이에 비하면, 이명박의 우둔함은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 ··· D1037959
게시판에 하도 알바다 많다보니 아고리언들이 이런 방법을 다 생각해냈군요.
글 쓸 땐 무조건 [명박퇴진]을 앞에 붙이자는 것이지요.
그러자면 알바도 [명박퇴진]을 앞에 붙일 수 밖에 없으니
알바들의 글도 의미가 삭감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ㅋㅋ
이 두뇌싸움의 끝은 도대체 어디까지 갈까요?
이제는 직접민주주의다!
1. 거리의 정치는 이미 대의제를 넘어섰다. 예전의 관성으로 거리에서 '대중'들을 '지도'하려 했던 시민단체들, 운동단체들은 이 놀라운 상황에 어찌할바를 모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들이 움직이는 방식도 일종의 대의제였기 때문이다. 대신 싸우고 사람들을 지도하고 이끌고, 경찰과 타협하고 사람들의 동선을 조율하는 것. 사람들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단체들, 운동단체들이 조율하는 것이 바로 대의제였고, 이것이 그 동안 우리 운동이 진행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거리의 정치는 이미 그것을 뛰어넘었다. 지도부가 없다. 누군가 마이크를 들고 '지도'하려고 하면 기어코 마이크를 꺼버린다. 그 누구도 이 공간에서 지배력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너와 나의 동등함. 그 동등함으로 그 공간에 같이 존재하자는 것이다.
그렇다고 질서가 없는가?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아름다운 시위는 본 적이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사람들은 무엇을 하면 되고 무엇을 하면 안되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경찰의 무수한 폭력에도 폭력으로 맞대응하는 것이 결코 도움이 안된다는 것을 잘 알기에 철저하게 자신들의 행동을 조율하고 있다. 누군가 사고를 칠 것 같으면 바로 격리시켜 버린다.
거리행진의 방향도 결정된 것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방향을 잃지도 않는다. 약간의 혼란이 있지만 곧 합의를 하고 움직인다. 결정은 바로 그 현장에서 이루어진다.
이미 거리에서는 직접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있다. 웬만한 사람은 눈치채지 못하는 이 거대한 변화를 은퇴한 노정객이 알아챘다.
""촛불집회, 직접민주주의 실현... 그리스 아테네의 직접 민주주의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2. 촛불문화제 전으로 돌아가 보자. 이 많은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광장에 모이게 되었을까? 그것은 순수하게 자발적인 움직임이었다. 광우병 쇠고기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울분, 그리고 광우병의 증거를 찾기 위해 정보를 확인하고 확인된 정보를 확산시키기 위해 키보드를 두드렸던 수백만개의 손가락들... 그것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마침내 수만개의 촛불로 변화되었다. 그 시작에는 어떤 지도부도 없었다. 어떤 지령도 없었다. 지침도 전략도 없었다. 수십만, 수백만의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움직이며 정보를 모으고 공유하고, 잘못된 정보를 확인하고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자신의 입장을 수정하고 최종적으로 거리에 선 것이다.
이 과정 속에는 어떤 대의제도 존재하지 않는다. 자기 스스로가 자기 스스로를 대표할 뿐! 나는 내가 본 것과 들은 것과 생각한 것과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속에서 나 스스로를 대표하기 위해서 광장에 선 것이지, 다른 어떤 누군가를 대표하기 위해서 혹은 다른 어떤 대표자를 뽑기 위해서 모인 것이 아니다.
바로 그렇기에 사람들은 기존 시민단체들의 익숙한 행동들에 제동을 걸 수 있었다. 공간을 너무도 크게 장악해버리는 깃발을 내리게 만들고, 커다른 피켓을 작은 피켓으로 대체시키고, 획일적인 문구를 다양한 주장으로 그리고 급기야 관성적으로 공간을 장악하려는 시민단체들의 마이크를 꺼버렸다. 나를 대신할 누군가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위대를 이끄는 건 경험많은 시민단체 회원, 운동단체 회원이 아니다. 바로 시민들 그 자신들이다.
직접민주주의!
이것이 바로 거리에서 작동하고 있는 직접민주주의이다.
3. 단지 거리뿐일까? 간접민주주의의 이론적 근거는 국가 단위의 영토와 국민수 정도가 되는 공간에서
1) (인터넷 이전의 사회에서) 다수의 사람들이 동등한 정보를 비슷한 순간에 공유할 수 없다는 것
2) 비슷한 정보를 공유하더라도 그 정보를 기반으로 한 다수의 판단이 빠르게 집적될 수 없다는 것, 따라서 다수의 의견을 모두 취합하기에는 의사결정이 너무 늦어지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다수의 의견을 모두 취합하는 (직접민주주의적인) 방식을 채택할 수 없다는 것
때문이었다.
<국민 주권>이라는 민주주의의 원래 이념에 비추어 간접민주주의는 사실상 주권을 위임하는 것이기에 민주주의의 원래 의미에서 벗어난 것임에도 불구하고, 간접민주주의가 작동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리고 역사상 있었던 그 무수한 직접민주주의 실험들이 실패했던 것은 이런 현실적인 장벽들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 이런 현상은 모두 역전되어 버렸다. 인터넷을 통한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은 근대국가라는 커다란 공간적인 거리를 더 이상 의미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공간을 뛰어넘는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로써 '다수의 사람들이 동등한 정보를 비슷한 순간에 공유할 수 없었던' 간접민주주의 첫번째 조건이 해체된다.
수십만, 수백만명의 의견이, 현실에서 필요한 실행의 속도를 방해하지 않고 수렴될 수 있을까? 당연하다. 이미 지난번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때 모바일 투표로 이에 대한 실험이 진행된 바 있다. 투표? 그것은 단지 형식적인 행위일 뿐이다. 사실 인터넷 게시판에 쏟아지는 댓글은 빠르면 하루 만에 민심을 파악하게 만든다. 이런 빠른 커뮤니케이션 덕분에 숭례문 화재 사건 때 이명박의 '성금 재건' 발언은 하루만에 취소되고 말았다.
사실은, 이미 우리 사회 내부 구성원들의 의사소통 속도는 직접민주주의 단계에 와 있다. 늦어지는 것은 오히려 정치권이다. 사회 내부에서 형성되는 의사소통과 판단의 집적이 간접민주주의에 기반한 지금의 정치권보다 훨씬 빠르기 때문에, 정치권이 사회 전체 의사소통의 속도를 막고 있는 형국이다. 즉 우리는 인터넷에 기반한 직접민주주의적인 미디어 환경에서 간접민주주의 정치제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즉 직접민주주의는 우리가 만들어야 할 지향점이나 이상향이 아니라, 환경, 인터넷 위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커뮤니케이션 환경이다.
따라서 우리는 사회 전체의 자원 분배 역할을 하는 정치적 의사결정이 민의가 형성되는 속도에 맞추기 위해서는 직접민주주의를 도입하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안된다면, 우리는 계속 의사결정이 지체되는 현상을 겪게 될 것이고 이것은 곧 사회 전체의 지체라는 문제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사실, 우리가 쇠고기를 통해 겪고 있는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사회 전체 의사결정의 지체!
이미 민의가 무엇인지는 분명해졌는데도 그것을 반영할 방법이 없으니 한달째 이러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터넷 시대의 커뮤니케이션 환경에 맞도록 정치제도를 바꾸는 것은 대단히 시급한 과제이다. 즉 우리는 이제 직접민주주의를 이 땅에 구현해야하는 환경을 맞고 있다.
4. 무엇을 할 것인가?
직접민주주의로 가는 길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직접민주주의에 회의적인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고, 직접민주주의를 두려워하는 기득권 층의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이며, 국가의 중요한 사안들을 보통 사람들의 평균적인 판단으로 결정하는 메커니즘에 대해 엘리트 지식인들의 회의적인 시선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인터넷 상에서는 직접민주주의를 향한 구호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http://www.gobada.co.kr/2mb_sig/sig.php 참조)
지금 우리에게 '국민 탄핵제'라는 권한만 있었어도 이 사태는 아주 쉽게 해결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한달이 넘는 기간 동안 수만명이 거리에서 뛰어다니고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릴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 직접민주주의를 정면으로 제기해야 한다. 만약 앞으로 개헌이 있다면, 우리는 직접민주주의의 가장 기초 항목인 국민 소환제, 국민 탄핵제, 국민 발의제를 관철시켜야 한다.
우리의 지향점은 분명하다. 21세기, 세계 정치사의 새로운 혁명, 직접민주주의가 우리의 눈 앞에 와 있다. 직접민주주의는 2천년 전 고대 그리스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지고, 이제 이 땅에서 두번째 만들어지는 것이다. 기원 이후 처음 있는 역사적 사건이 바로 우리 앞에서 일어나고 있다. 2천년 전 그리스의 메타포를 채용한 다음의 아고라는 단지 어느 한 인터넷 업체의 단순한 서비스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2천년 전의 전무후무한 역사적 경험을 다시 불러오고 있다는 상징적인 공간이며, 개인들의 직접행동을 이끌어낸 직접민주주의의 예비공간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금의 우리 모습을 자랑스러워할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바로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직접민주주의가 십년 후에 세계의 정치체제를 바꿀 것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 Boys, Be MBtious (소년이여, MB를 닮아라)
인터넷 댓글 : Boys, be MB shuts. (소년이여, MB 입 좀 막아라)
아래 패기 넘치는 아이들의 글이 있군요.. ㅎㅎ (원문)

PS : 두번째 글은 청계천에서 개그맨 노정렬씨가 한 말입니다.
갑작스런 중고생들의 거리 진출에 대해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직까지 이런 규모로 아이들이 사회에 진출한 적은 없었기에 이것은 일찍이 우리 사회에서 드문 일이고 적잖이 놀라운 일임에 분명하다.
현장에 가보면 알겠지만 촛불문화제 참석자의 절반 이상이 중고생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들이 선동과 유언비어에 움직인다고 주장하지만 이들이 단상에서 발언하는 내용을 들어보면 그들의 논리는 아주 분명하다.
사실 오히려 집회를 이끌고 있는 건 중고등학생들이다. 어른들이 오히려 아이들에게 선동당하고 있다. (나를 포함해 나이 좀 있는 사람들 이 대목에서 부끄러워 해야한다.)
그들은 교육자율화, 대학등록금, 영어몰입교육, 우열반 편성 등 자신들이 처한 교육 환경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미국산 소고기와 광우병의 상관관계를 잘 알고 있으며 대운하와 수도 민영화와 의료보험법 개정이 무슨 의미인지 그들은 정말로 똑똑하게 이명박 정부가 그 동안 무슨 일을 해왔는지를 잘 알고 있다.
촛불문화제에서 아이들이 하는 얘기를 한번 들어보라. 그들은 자신들이 배운 민주주의의 기초 즉 다수 국민의 뜻을 따르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으며 왜 자신들이 배운 것과 정치권이 하는 것이 틀리냐고 지적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배웠습니다. 저도 국민의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집회를 불법으로 규정하십니까? 나도 국민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일까? 도대체 아이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사회에 관심이 많아졌을까?
나는 크게 3가지 이유를 뽑는다.
첫번째 : 세대론
이들은 지금까지 한국사회에서 가정에서의 억압, 교육현장에서의 억압, 사회 구조적인 억압에서 가장 덜 노출된 세대이다. 사실상 이전 세대가 피흘려가면 만들어낸 민주화의 혜택 속에서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가장 덜 권위적으로 자란 세대들이다. (물론 아직도 많은 학교는 아직 권위적이긴 하지만...) 또한 월드컵 축제를 초등학교 때 경험한 월드컵 세대들이기도 하다.
어떤 분은 이 세대가 '자기 몸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첫번째 세대라고 한다. 즉 자기 몸과 자기 자신 그리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개인적인 욕망을 가진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단상에 올라온 아이들은
'나 죽기 싫어요'
'나는 커서 훈남 만나서 천년 만년 잘 살고 싶어요'
'우리도 나중에 클럽도 가고 부킹도 해야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 것도 누려보기 전에 왜 우리를 병들게 하려고 합니까?'
라는 발언들을 자유롭게 말한다. 물론 이런 발언들은 거기 모인 또 다른 학생들의 열렬한 호응을 일으킨다.
두번째 : 네트워킹
요즘 아이들이 숙제를 하는 방법이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네이버 지식검색과 네이트온을 켜놓고 숙제를 한단다.
예전의 정보는 외우는 것이 주된 것이었다면 이제 정보는 찾는 것이 중요해진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찾은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들은 지식을 습득하는데 있어 네트워크를 가장 기본적인 활동으로 삼고 있다. 이것이 이전 세대들이 학습하던 습관과 달라지는 점이다.
기존에 공부는 달달 외우는 것이었다. 심지어 수학도 외워서 푸는 방식으로 배운다. 그런데 이들은 외우는 것 이외에 정보를 찾고 조합하는 일들을 한다. 외우는 지식에서 찾는 지식, 찾은 지식을 공유하고 재조합하는 것...
사실 이미 정보가 엄청나게 쌓여있는 마당에 네트워크에 접속만 하면 정보를 알 수 있는 마당에 외우는 능력이 뭐가 그리 중요할까? 인터넷 시대에 필요한 능력은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찾고 조합하고 필요할 때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리고 이들은 검색과 메신저를 사용하여 자연스럽게 이런 습관을 가지게 된 세대들이다.
정보를 찾는 것뿐만 아니라 공유하는 일에서도 이들은 탁월하다. 이들은 어떤 소식을 들으면 문자로 쪽지로 순식간에 공유한다. 게시판에 펌질을 하고, 친구들과 지인들과 공유한다. 정보의 공유에 있어서는 이전의 어떤 세대들보다 빠르다. 그리고 그렇게 공유된 정보는, 필요한 경우 공동의 행동으로 연결된다.
"너도 나가니? 나도 간다..."
사회 행동을 하는데 있어 혼자는 아무래도 두렵다. 이들은 네트워킹을 통해 자신들이 혼자가 아님을 안다. 친구들과 친구의 친구들과 그 친구의 친구의 친구들이 함께 행동할 것을 순식간에 공유하고 나면, 혼자 행동해야한다는 두려움 따위는 생길 이유가 없다.
아이들은 개인적이고 고립되어 있는 것 같지만 또 다른 면에서는 고도로 네트워크화되어 있다. 그리고 이 네트워크가 아이들을 공동행동으로 이끈다.
세번째 : 정보량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습득하는 정보량이 성인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 10년전만 하더라도 신문을 읽거나 뉴스를 접하는 학생들은 많지 않았다. 신문을 보는 가정도 많지 않았고, 학생이 뉴스를 보고 있을 시간도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학교라는 제도가 아이들을 사회로부터 격리시켰고, 아이들은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커리큘럼 이외의 정보를 습득할 방법이 거의 없었다. 조금 다른 환경을 가진 아주 소수의 아이들을 제외하고 말이다.
그런데 이제 아이들은 인터넷을 통해 온갖 소식을 접할 수 있다. 자신들과 관계 있는 신문기사, 뉴스는 즉시 반 아이들과 공유해서 읽을 수도 있다. 즉 적어도 이들은 이전 세대의 중고등학생들과 같이 학교 외부의 정보, 사회에 대한 정보로부터 차단되지 않은 아이들이다.
비슷한 정보량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들이 성인과 별로 차이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니 오히려, 신문이나 뉴스를 거의 보지 않는 다수의 어른들과 조중동에서만 정보를 얻는 어른들과 비교하면 이들의 정보 습득량이 훨씬 많다.
이러한 특성은 원시사회를 돌이켜보면 훨씬 잘 이해된다.
원시사회에서는 지금의 중고등학생들과 비슷한 나이인 15-16세에 성인식을 했는데 성인식을 한 후에는 어른과 똑같은 대접을 해 주었다. 심지어는 12-13세에 성인식을 하는 부족도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 조선시대까지 한국에서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15-16세가 되면 결혼을 할 수 있었고, 결혼을 하고 나면 어른으로 활동하는 것이다. 즉 그 정도 나이면 부족 안에서 어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그 공동체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경제활동에 참여하거나 결혼과 아이로 부족 구성원을 재생산하거나 하는 어른들의 활동 말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그들은 삶과 학습이 분리되어 않았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부족이라는 작은 공동체 안에서 가족과 공동체 구성원들이 거의 매일 접촉을 하며 살았는데, 이런 사회구조는 그 공동체 내부에서 발생하는 거의 모든 일들을 전체 구성원이 공유하게 만든다. 학교라는 공간이 없이 공동체 내부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15-16년 동안 어른들이 하는 일을 그대로 보고 따라서 배운다. 일상이 배움이고 놀이이고 어른들 따라하기이고, 공동체의 어떤 의례, 규칙, 삶의 방식을 배우는 공간이다. 그들은 공동체 안에서 10여년을 배우지 않으면서 배운다.
즉 그 부족의 생존에 필요한 각종 정보들을 일상에서 매일 습득했기 때문에 다시 말하면 자신들의 사회에 대해서 어른들과 비슷한 정보량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나이가 되면 어른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근대사회에 들어와서는 이것이 확연하게 달라지는데 그것은 근대사회는 아이들을 학교라는 공간에서 사회와 고립시켜 길러왔기 때문이다. 즉 아이들은 교과서에 나오는 커리큘럼만 배울 뿐 그 이외 사회에 대한 정보는 접할 방법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인터넷에 들어오면서는 사정이 달라진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원하기만 하면 어른들과 동등한 수준의 정보를 습득할 수 있다. 특히 기존에 알려진 정보가 많지 않은 광우병과 경우, 매일 새로운 정보가 쏟아지는 사안에 대해서는 어른과 아이들의 정보량 차이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차이라고 한다면 삶의 경험으로서만 축적될 수 있는 종류의 지식, 지혜 혹은 지나온 세월 동안의 역사적인 흐름에 대한 인식, 사회생활에서의 좋은 혹은 좋지 않은 경험... 이런 정도가 차이가 날까?
즉 인터넷이 사회의 중추적인 커뮤니케이션 매개체 역할을 하는 지금의 사회에서 사회의 어떤 영역들은 원시사회에서 아이들이 그 공동체의 모든 정보를 어른들과 동등한 수준으로 접하는 바로 그런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들을 어른보다 못한 ‘아이’라고 보는 순간 우리는 심각한 혼란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들의 사회적인 진출은 이미 몇가지 사건으로 예견되어 있었다. 이들이 스스로 문제제기하고 조직해서 만들어낸 두발 자유화 시위가 그 한 사례이다.
또한 자신들이 좋아하는 '오빠'들이 기획사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을 보고 자신들이 직접 연계기획사를 차려 오빠들을 빼내오겠다고 했다가 급기가 그 회사의 주식을 사서 아예 회사를 인수하려고 시도를 했던 사건 역시 무시할 수 없는 한 사례이다.
특히 두 번째 방법은 예전의 아이들이라면 생각할 수도 없었던 방법이다. 아니, 오히려 어른들의 상상력을 뛰어넘는다. 그들은 어른들의 상상력이 미치지 못하는 방법으로 세상에 진출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그들을 ‘아이들’가 아닌 다른 시각으로, 동등한 개체로 보아야 한다. 중고등학생들을 예전과 같은 아이로 보는 순간 아이들은 아마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가 아직도 애들로 보이니?"

글
댓글을 달아 주세요
댓글 RSS 주소 : http://blocho.com/rss/comment/283새벽에 일어나 소식을 듣고는 어이가 없어지더군요.
mb는 국민, 남녀노소 세대의 벽을 허물어 주고 있습니다.
'조망간'은 '조만간'으로 고치시는게 좋을 듯 싶습니다.
반복되어 여러번 나오다보니 눈에 조금 걸리네요. ^^
앗.. 제 잘못된 습관을 지적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
매우 공감합니다. 의식이 고정되어 있다는 것이 참 경이롭기만 합니다.
불행하게도 이명박 정부는 90년대도 아닌 80년대인 것 같습니다. 80년대에 있었던 일들을 기준으로 앞으로의 행동을 예상하면 거의 맞아떨어질 듯 합니다.
어디까지 하나 보자 이명박 이 씹어먹을새끼 -_- 니가 대통령되고 되는게 하나도 없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