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티즌, 직접민주주의의 돛을 올리다!
거리에서 '탄핵'이란 소리가 넘쳐흐른다. 다음 아고라에서 시발된 탄핵의 목
소리는 꺼질 줄 모른다. 이명박 본인이 만든 청계광장을 가득 메운 촛불은
현재의 민심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이 촛불은 쉽게 사그라들 것 같지
않다.
사기업인 인터넷 포털 다음에서 진행되는 법적인 구속력이 없는 포털 서비스
에서의 서명운동이지만, 이미 그 서명을 통해 표현된 의지만 120만명을 훌쩍
넘겼다. 갈길이 태산이다. 의료보험 민영화, 공기업 민영화, 대운하, 자사고
설립 등등... 무엇 하나 걸림돌이 아닌 것이 없다. 이명박 정부는 특유의 추
진력으로 100m 달리기를 하러 나왔는데, 알고 보니 장애물 경기장에 들어선
것이다. 과연 이 경기의 끝은 어떻게 될 것인가? 누구도 그 끝을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미 우리에게 '탄핵'이란 단어는 낯선 단어가 아니다. 2004년 우리는 이미
대통령 탄핵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
다. 무엇보다, 그때는 국민의 '대리인'인 국회의원들이 탄핵을 시도했었고,
대리인들의 탄핵 시도는 바로 '주권재민'의 주체인 국민들에 의해 저지되었
다. 그런데 지금은 '주권'을 가지고 있는 국민들이 탄핵을 주장하고 있다.
탄핵의 주체가 달라진 것이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커다란 간극을 발견한다. 바로 '주권을 가진 국민들'과
'국민들의 정치적 대리인들' 사이의 간극 말이다. 이 간극은 이미 2004년의
탄핵에서 한번 확인된 바 있다. 그리고 2008년 우리는 이 간극, 바로 민심과
정치집단 사이의 괴리를 다시 한번 확인한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원론에서는 '주권을 가진 국민들'과 '국민들의 정치적 대
리인들'이 서로 밀접하여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상정되어 있다. 적어도 원론
적으로는 마치 그 둘이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서로를 끌어주는 것
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대의제 민주주의 이론이 어떻든, 현재 시점에 그 둘
사이는 서로 들떠 있다.
국민들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된 바로 그 대통령을 배출한 한나라당이 민심
으로부터 이반되어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야당은?
민주당으로 대변되는 야당 역시 국민들의 민심으로부터 붕 떠있기는 마찬가
지다. 그들은 민심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민심 뒤에 숨어 눈치를 보고 있
다. 탄핵의 대상이 된 여당과 민심을 읽지 못하는 부실하기 짝이 없는 야당
만이 존재하는 지금, 지금의 상황만을 놓고 본다면 아마도 사람들이 직접 나
선 것은 자신을 대변해줄 변변한 야당도 없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가능할 것
이다. 즉 제대로된 야당이 있었다면 '민심'을 대변해 줄 수 있었으리라는 가
정, 그래서 대의제 민주주의가 여전히 유효하게 작동했으리라는 가정 말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우리가 꼭 짚어보아야할 또 다른 중요한 요인은 없을까?
'국민들의 대리인'이 모인 정치권에서 그 누구도 언급하지 않았던 탄핵이
국민들의 입에서 자발적으로 나오기 시작하고,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왔
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그것은 첫번째, 지금 현재 한국에서 국민의
민의를 대변하는 대의제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두번째 더
중요한 것은 이제 국민들 스스로 탄핵을 제기할 수 있을 정도로 직접적인 참
여가 가능한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사실 첫번째 문제는 대의제가 거
의 언제나 잘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다지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두번째, 불과 일주일만에 국민들의 직접적인 참여가 가능해지는 환경은, 우
리에게 전혀 새로운 것이다.
지금의 상황을 다시 한번 돌이켜 보자. 야당이 아주 소극적으로 쇠고기 협상
을 비판하고 있을 즈음, 최초의 촛불문화제였던 5월 2일 청계광장의 집회 소
식이 인터넷을 통해 퍼지기 시작한 건 정말 일주일도 채 안되는 일이었다.
그 일주일 사이에 사람들은 스스로 정보를 공유하고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공감대를 만들고 급기야 수만명의 인파를 청계광장의 촛불로 연결시켰다. 그
런데 이렇게 사람들이 순식간에 참여하는 환경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사
실 촛불의 시발점이었던 '미선이 효순이' 추모 집회는 집회가 제안된지 불과
3-4일만에 조직되었다. 숭례문 화재 때 '국민 성금으로 숭례문을 재건하겠다
'는 발언은 인터넷에 쏟아지는 여론의 폭탄을 맞았고, 바로 그 다음날 철회
되었다. 불과 하루만에 말이다.
이제 우리는 어떤 이슈가 공론화되는 것은 하루면 충분하고, 큰 사안인 경우
에도 다수의 사람들이 정보를 습득하고 공유하고 토론하고 입장을 정리하고
행동에 나서기까지 이 모든 과정들이 일주일이면 가능한 시점에 다다른 것이
다. 즉 국민들의 집합적인 의사형성 및 표현 시간은 점점 짧아지고 있으며,
이는 곧 대의제 정치인들이 이를 수렴하여 정책에 반영하는 시간과의 차이가
점점 더 격차가 벌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이 바로 속도! 즉 국민들이 공론을 형성하고 의사를 표현하는 시간이
불과 일주일 안팎으로 당겨지는 지금의 커뮤니케이션 속도를 '직접민주주의
가 가능해지는 환경'이라고 본다. 기존의 정치권은 민심 위에 들떠있고, 국
민들은 직접적인 참여를 할 수 있는 환경! 이런 환경 속에서 대의제 민주주
의는 이제 더 이상 인터넷으로 형성되는 민심의 속도를 좇아갈 수 없다.
정치권이 국민들의 요구를 따라갈 수 없고, 국민들은 직접 참여할 수 있는데
굳이 대의제 민주주의에 머무를 필요가 있을까?
역사적으로 대의제 민주주의가 광범위한 동의를 얻은 것은, 근대국가 정도의
넓은 공간과 최소 수백만에서 수억에 이르는 인구수를 가진 공동체에서 개인
들끼리의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하고, 따라서 공동체 안의 중요한
사안들에 대해 빠르게 의견을 수렴하고 의사결정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즉 대의제 민주주의의 존재 의미는 대의제가 근대 국가 내부에서
커뮤니케이션 속도의 시공간적 제약을 보완할 수 있는 유력한 장치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터넷 시대에 국민들이 직접 사회적인 의제를 설정
하고 공론을 형성하고 직접 행동을 하는 상황에 이르러, 개인들이 인터넷으로
휴대폰으로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는 상황에 이르러, 우리에게 대의
제 민주주의가 적합한지에 대해서 우리는 심각한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대의제로 민의를 반영하는 속도와 국민들이 스스로 공론을 형성하고
행동에 나서는 속도의 차이는 점점 격차가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터넷이 도입되면서 직접민주주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이야기는
이미 1990년대 초반부터 자주 거론되었던 이야기이다. 아니 이미 1960년대에
맥루한은 전기시대에 이르러 대의제 민주주의가 직접민주주의로 바뀔 것이라
고 예언한 바 있다.
정보의 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정치는 대표를 선출하여 결정권을 위탁하는
경향에서 벗어났다. 전 사회 공동체가 의사 결정이라는 중추적 행위에 직접적
으로 관여하게 된 것이다. 정보의 속도가 느려지면 대리자나 대표자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대리자들을 내세움으로써, 사회의 다른 사람들이 처리되고
고려되기를 바라는 공공의 관심사에 대한 여러 분야의 견해들을 내세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전기의 속도가 이러한 대리, 대표 조직에 도립될 때, 이미
구식이 되어버린 이러한 조직은 속임수와 임시변통이라는 방법으로 간신히 그
기능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맥루한, <미디어의 이해>)
맥루한이 예언했던 바로 그 현상이 지금 21세기 한국에서 시작되고 있다.
나는 이미 다음 아고라에서 비공식적이고 비제도적이지만 실질적인 의미의
직접민주주의가 시작되었다고 판단한다. 네티즌들에 의해 직접민주주의의 '
돛'이 올려진 것이다. 만약 그것이 실제 법적인 효력이 있는 서명이라면, 그
끝은 정말 '탄핵'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비공식적인 서명이며, 따
라서 그것이 전체 국민 2/3의 서명을 얻는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로 법적인
구속력을 가지지는 않는다. 지금의 한계는 바로 이것이다 : 민심은 드러나지
만 그것을 반영할 수 있는 제도적인 통로가 존재하지 않는 것. 지금 우리의
문제는 우리 사회의 어디에도 이런 국민들의 직접적인 요구를 수렴할 사회적
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제도화의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이미 우리는 수차례의 경험
을 통해 국민들 스스로 의제를 설정하고 담론을 형성하고 행동을 조직하는
사례를 보아왔다. 이제 우리의 과제는 직접민주주의를 제도화하여 개인들의
집합적인 의사가 실시간으로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직접민주주의가 우리들의 정치체제로 자리잡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직접민주주의의 역사적 원형인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 체제
는 그것이 완성되기까지 3-4백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우리가 인터넷이란
훌륭한 툴을 가지고 있더라도 고대 그리스의 직접민주주의 제도 정도를 완성
하기까지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단지 우리 사회에 직접민주주
의가 필요하고 지금 시점에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공론화하는 데에만도 최
소 몇 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지 않을까? 또한 어떤 형태의 직접민주주의가
우리에게 적합한지를 모색하는데에도 상당히 오랜 시간과 실험과 시행착오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굳이 이 작업을 큰 국가단위에서 시작할 필요는 없다. 가장 먼저
'직접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정당' 같은 곳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사안을 당원들
에게 직접물어 당의 진로를 결정하는 선도적인 실험을 할 수도 있다. 또한
시나 군 단위의 지방자치체에서 작은 규모로 직접민주주의를 시범적으로
시행해볼 수도 있다. 그렇게 작은 영역부터 직접민주주의를 도입하고 그
것을 제도화함으로써 우리는 사회 전반을 직접민주주의 형태로 바꾸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시도가 아주 낯선 것만은 아니다. 이미 우리는 직접민주주의와 유사한
형태의 참여행위들을 경험한 바가 있다. 2002년 유시민씨를 주축으로 만들어
진 개혁당은 인터넷에 기반한 당원들의 직접 투표로 정당의 주요 정책을 결
정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하지만 이 실험은 당원들의 직접적인 의사결정
구조가 완벽하게 보장되지 않았다는 점과, 개혁당이 자리를 잡기도 전에 해
체되고 말았다는 점 등에서 여러가지 한계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더라도
그것은 큰 의미를 지닌 실험이었다. 이것은 비록 정당수준에서 일회적으로
행해진 것이긴 하지만, 인터넷에 기반한 직접민주주의적인 의사결정체계가
정당으로서 정책을 제시하고 의견을 수렴하고 그것을 집행하는데 필요한 의
사결정 속도를 방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국민들의 직접적인 의사를 수렴하는 새로운 기술적인 방안
도 경험했다. 2007년 통합민주당 대선 경선 때 한명숙 전 총리가 처음 제안
한 모바일 투표는 방법상 다소 어려워보이는 '실시간 여론 수렴'에 대해서
꽤 신뢰성 있는 대안을 실험한 역사상 최초의 사례이다. 그리고 그 이후 민
주노동당과 창조한국당도 모바일 투표를 시행한 바 있어, 향후 실시간으로
민심을 수렴하는 하나의 기술적 장치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해 주
었다.
이것만이 아니다. 인터넷에서 정보 생산과 유통을 원활하게 해주고 보다 더
나은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게 해주고 개인들의 자기표현을 촉진하는
Web2.0 관련 기술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커뮤니케이션 환경을 제공해줄
것이다. 더구나 24시간 항시 네트워크에 접속이 가능한 무선인터넷 환경은
더욱 원활한 커뮤니케이션 환경을 만들어 줄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직접민주주의가 이미 우리 옆에 다가
오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터넷 시대에 대의제 민주주의는 몸에 맞지 않
는 작은 옷이다. 그것은 우리의 활동을 불편하게 만든다. 이제 우리에게 필
요한 새로운 옷, 직접민주주의를 만들어가야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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