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의원은 “인터넷이 ‘디지털 마오이스트’들에게 수시로 공격당하고, 이들에 의해 진정한 민주주의가 수시로 위협받는 ‘야만의 공간’이 아니라, 건강한 민주시민들의 공간이 되도록 하자면 자신의 이름을 당당하게 드러내고 사용하도록 하는 일은 너무도 당연하다”면서 “대중 앞에 글을 쓸 때 당당하게 제 이름을 드러내고 못할 얘기는 해서는 안 될 얘기가 태반”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실명제? 진짜 실명제 하면 가장 무서워할 사람들이 바로 자신들이라는 걸 모르니 역시 한나라당은 구시대가 맞는 거 같다.
만약 다음 아고라 청원게시판에 실명으로 청원을 썼다고 상상해보자.
저 136만명의 사람들이 실명까고 서명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저건 빼도박도 못하고 그대로 법적 효력을 갖는 것이다.
심지어 뉴스의 모든 댓글도 저렇게 된다고 생각해 보자. 정책 발표 되었을 때 댓글 하나로 여론 수렴 끝이다.
한나라당이 이걸 감당할 수 있을까?
그러니 저 정도 가지고 이 사태가 진정되겠나? 그들이 이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인터넷을 끊는 거다.
아직까지 이런 규모로 아이들이 사회에 진출한 적은 없었기에 이것은 일찍이 우리 사회에서 드문 일이고 적잖이 놀라운 일임에 분명하다.
현장에 가보면 알겠지만 촛불문화제 참석자의 절반 이상이 중고생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들이 선동과 유언비어에 움직인다고 주장하지만 이들이 단상에서 발언하는 내용을 들어보면 그들의 논리는 아주 분명하다.
사실 오히려 집회를 이끌고 있는 건 중고등학생들이다. 어른들이 오히려 아이들에게 선동당하고 있다. (나를 포함해 나이 좀 있는 사람들 이 대목에서 부끄러워 해야한다.)
그들은 교육자율화, 대학등록금, 영어몰입교육, 우열반 편성 등 자신들이 처한 교육 환경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미국산 소고기와 광우병의 상관관계를 잘 알고 있으며 대운하와 수도 민영화와 의료보험법 개정이 무슨 의미인지 그들은 정말로 똑똑하게 이명박 정부가 그 동안 무슨 일을 해왔는지를 잘 알고 있다.
촛불문화제에서 아이들이 하는 얘기를 한번 들어보라. 그들은 자신들이 배운 민주주의의 기초 즉 다수 국민의 뜻을 따르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으며 왜 자신들이 배운 것과 정치권이 하는 것이 틀리냐고 지적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배웠습니다. 저도 국민의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집회를 불법으로 규정하십니까? 나도 국민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일까? 도대체 아이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사회에 관심이 많아졌을까?
나는 크게 3가지 이유를 뽑는다.
첫번째 : 세대론 이들은 지금까지 한국사회에서 가정에서의 억압, 교육현장에서의 억압, 사회 구조적인 억압에서 가장 덜 노출된 세대이다. 사실상 이전 세대가 피흘려가면 만들어낸 민주화의 혜택 속에서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가장 덜 권위적으로 자란 세대들이다. (물론 아직도 많은 학교는 아직 권위적이긴 하지만...) 또한 월드컵 축제를 초등학교 때 경험한 월드컵 세대들이기도 하다.
어떤 분은 이 세대가 '자기 몸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첫번째 세대라고 한다. 즉 자기 몸과 자기 자신 그리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개인적인 욕망을 가진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단상에 올라온 아이들은
'나 죽기 싫어요' '나는 커서 훈남 만나서 천년 만년 잘 살고 싶어요' '우리도 나중에 클럽도 가고 부킹도 해야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 것도 누려보기 전에 왜 우리를 병들게 하려고 합니까?'
라는 발언들을 자유롭게 말한다. 물론 이런 발언들은 거기 모인 또 다른 학생들의 열렬한 호응을 일으킨다.
두번째 : 네트워킹 요즘 아이들이 숙제를 하는 방법이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네이버 지식검색과 네이트온을 켜놓고 숙제를 한단다.
예전의 정보는 외우는 것이 주된 것이었다면 이제 정보는 찾는 것이 중요해진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찾은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들은 지식을 습득하는데 있어 네트워크를 가장 기본적인 활동으로 삼고 있다. 이것이 이전 세대들이 학습하던 습관과 달라지는 점이다.
기존에 공부는 달달 외우는 것이었다. 심지어 수학도 외워서 푸는 방식으로 배운다. 그런데 이들은 외우는 것 이외에 정보를 찾고 조합하는 일들을 한다. 외우는 지식에서 찾는 지식, 찾은 지식을 공유하고 재조합하는 것...
사실 이미 정보가 엄청나게 쌓여있는 마당에 네트워크에 접속만 하면 정보를 알 수 있는 마당에 외우는 능력이 뭐가 그리 중요할까? 인터넷 시대에 필요한 능력은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찾고 조합하고 필요할 때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리고 이들은 검색과 메신저를 사용하여 자연스럽게 이런 습관을 가지게 된 세대들이다.
정보를 찾는 것뿐만 아니라 공유하는 일에서도 이들은 탁월하다. 이들은 어떤 소식을 들으면 문자로 쪽지로 순식간에 공유한다. 게시판에 펌질을 하고, 친구들과 지인들과 공유한다. 정보의 공유에 있어서는 이전의 어떤 세대들보다 빠르다. 그리고 그렇게 공유된 정보는, 필요한 경우 공동의 행동으로 연결된다.
"너도 나가니? 나도 간다..."
사회 행동을 하는데 있어 혼자는 아무래도 두렵다. 이들은 네트워킹을 통해 자신들이 혼자가 아님을 안다. 친구들과 친구의 친구들과 그 친구의 친구의 친구들이 함께 행동할 것을 순식간에 공유하고 나면, 혼자 행동해야한다는 두려움 따위는 생길 이유가 없다.
아이들은 개인적이고 고립되어 있는 것 같지만 또 다른 면에서는 고도로 네트워크화되어 있다. 그리고 이 네트워크가 아이들을 공동행동으로 이끈다.
세번째 : 정보량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습득하는 정보량이 성인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 10년전만 하더라도 신문을 읽거나 뉴스를 접하는 학생들은 많지 않았다. 신문을 보는 가정도 많지 않았고, 학생이 뉴스를 보고 있을 시간도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학교라는 제도가 아이들을 사회로부터 격리시켰고, 아이들은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커리큘럼 이외의 정보를 습득할 방법이 거의 없었다. 조금 다른 환경을 가진 아주 소수의 아이들을 제외하고 말이다.
그런데 이제 아이들은 인터넷을 통해 온갖 소식을 접할 수 있다. 자신들과 관계 있는 신문기사, 뉴스는 즉시 반 아이들과 공유해서 읽을 수도 있다. 즉 적어도 이들은 이전 세대의 중고등학생들과 같이 학교 외부의 정보, 사회에 대한 정보로부터 차단되지 않은 아이들이다.
비슷한 정보량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들이 성인과 별로 차이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니 오히려, 신문이나 뉴스를 거의 보지 않는 다수의 어른들과 조중동에서만 정보를 얻는 어른들과 비교하면 이들의 정보 습득량이 훨씬 많다.
이러한 특성은 원시사회를 돌이켜보면 훨씬 잘 이해된다. 원시사회에서는 지금의 중고등학생들과 비슷한 나이인 15-16세에 성인식을 했는데 성인식을 한 후에는 어른과 똑같은 대접을 해 주었다. 심지어는 12-13세에 성인식을 하는 부족도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 조선시대까지 한국에서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15-16세가 되면 결혼을 할 수 있었고, 결혼을 하고 나면 어른으로 활동하는 것이다. 즉 그 정도 나이면 부족 안에서 어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그 공동체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경제활동에 참여하거나 결혼과 아이로 부족 구성원을 재생산하거나 하는 어른들의 활동 말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그들은 삶과 학습이 분리되어 않았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부족이라는 작은 공동체 안에서 가족과 공동체 구성원들이 거의 매일 접촉을 하며 살았는데, 이런 사회구조는 그 공동체 내부에서 발생하는 거의 모든 일들을 전체 구성원이 공유하게 만든다. 학교라는 공간이 없이 공동체 내부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15-16년 동안 어른들이 하는 일을 그대로 보고 따라서 배운다. 일상이 배움이고 놀이이고 어른들 따라하기이고, 공동체의 어떤 의례, 규칙, 삶의 방식을 배우는 공간이다. 그들은 공동체 안에서 10여년을 배우지 않으면서 배운다.
즉 그 부족의 생존에 필요한 각종 정보들을 일상에서 매일 습득했기 때문에 다시 말하면 자신들의 사회에 대해서 어른들과 비슷한 정보량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나이가 되면 어른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근대사회에 들어와서는 이것이 확연하게 달라지는데 그것은 근대사회는 아이들을 학교라는 공간에서 사회와 고립시켜 길러왔기 때문이다. 즉 아이들은 교과서에 나오는 커리큘럼만 배울 뿐 그 이외 사회에 대한 정보는 접할 방법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인터넷에 들어오면서는 사정이 달라진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원하기만 하면 어른들과 동등한 수준의 정보를 습득할 수 있다. 특히 기존에 알려진 정보가 많지 않은 광우병과 경우, 매일 새로운 정보가 쏟아지는 사안에 대해서는 어른과 아이들의 정보량 차이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차이라고 한다면 삶의 경험으로서만 축적될 수 있는 종류의 지식, 지혜 혹은 지나온 세월 동안의 역사적인 흐름에 대한 인식, 사회생활에서의 좋은 혹은 좋지 않은 경험... 이런 정도가 차이가 날까?
즉 인터넷이 사회의 중추적인 커뮤니케이션 매개체 역할을 하는 지금의 사회에서 사회의 어떤 영역들은 원시사회에서 아이들이 그 공동체의 모든 정보를 어른들과 동등한 수준으로 접하는 바로 그런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들을 어른보다 못한 ‘아이’라고 보는 순간 우리는 심각한 혼란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들의 사회적인 진출은 이미 몇가지 사건으로 예견되어 있었다. 이들이 스스로 문제제기하고 조직해서 만들어낸 두발 자유화 시위가 그 한 사례이다.
또한 자신들이 좋아하는 '오빠'들이 기획사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을 보고 자신들이 직접 연계기획사를 차려 오빠들을 빼내오겠다고 했다가 급기가 그 회사의 주식을 사서 아예 회사를 인수하려고 시도를 했던 사건 역시 무시할 수 없는 한 사례이다.
특히 두 번째 방법은 예전의 아이들이라면 생각할 수도 없었던 방법이다. 아니, 오히려 어른들의 상상력을 뛰어넘는다. 그들은 어른들의 상상력이 미치지 못하는 방법으로 세상에 진출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그들을 ‘아이들’가 아닌 다른 시각으로, 동등한 개체로 보아야 한다. 중고등학생들을 예전과 같은 아이로 보는 순간 아이들은 아마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여태까지 군인 신분이라는 제약으로
하고픈 말이 있어도 본의 아니게 참았었습니다.
뭐... 군인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지요.
그래서 본의는 아니었지만 어리석게도 저는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이제서야 민간인의 신분이 된 이 때,
광우병 파동으로 정의롭게 분노하고 있는
우리 후배들, 10대들에게 이제는 대학생으로서
정말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어르신들은 말씀하십니다.
그런 거 할 시간에 공부나 더 해라......
내용인즉 스포츠서울 기자가 디워의 미국 관객수를 계산해서 회당 10명이라고 기사를 쓴 것이죠. 미국에서 주말 매출 4위라는 보도를 생각해보면 언뜻 이해가 잘 안가는 것인데, 역시나 그 밑에 댓글들이 그냥 넘어가지 않는군요.
미국 영화관의 상영횟수 분석, 어린이 입장 수 등등에 기반해 계산이 틀렸다는 주장부터 그런식으로 따지면 미국의 지난 주말 1위 영화가 회당 관객 20명이라는 분석까지...
그 중 추천 1위를 차지한 댓글은 아래와 같습니다.
이런게 바로 댓글의 힘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말 그대로 집단지성이지요. 수천개, 수만개의 눈들이 자신이 본 것을 토대로 제공하는 정보 앞에서는 어설픈 비판이나 수상한 의도들이 자리잡기 쉽지 않다는 것이지요.
이런 현상들은 예전에 네이버에서 채택했던 한줄 댓글에서는 불가능합니다. 한줄 댓글에 쓸 수 있는 게 고작해봐야 열글자 20글자이고 보면, 위 글을 쓴 사람이 한줄 댓글에 쓸 수 있는 거라곤 "미국 박스오피스의 현실을 잘 모르고 쓴 기사"라는 제목 정도일 겁니다. 그게 왜 잘못된 것인지 근거를 제시할 수 없었죠. 그러다보니 못다한 말을 하기 위해서 말이 격해지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그걸 게시판형 댓글로 개편하고, 추천시스템을 달아놓으면서 비교적 양질의 글들이 손쉽게 사람들 눈에 띄게 될 수 있게 된 것이죠. 물론 이런 경우에도 몇가지 문제점이 있긴 하지만, 그것도 어느 선까지 운영이나 혹은 시스템적 장치로 필터링이 가능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게시판에서 흔히들 벌어지는 않좋은 모습을 보고 네티즌은 안된다느니 대한민국 사람들은 질떨어진다느니 그런 이야기들을 하지만 사실 그러한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 중에는 서비스적인 문제도 대단히 큽니다.
그나저나 기사 쓰는 분들은 이제 웬만한 속임수 가지고는 사람들 속이기 쉽지 않다는 것을 빨리 알아야할텐데 말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댓글이 안보여 살펴보니 댓글 전체를 없애버렸네요. 시행시점이 9월 10일인데, 그 이전 기사들도 모두 댓글이 없어졌습니다.
전에 봤던 기사에 어떤 글들이 올라왔나 보려 했더니 아무것도 안나오더군요. 상당히 당황스럽더군요.
자세히 살펴보니 댓글이 모조리 없어지고 정치관련 댓글은 모두 한 게시판으로 몰았습니다. 위 설명문엔 건전한 토론을 활성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되어 있지만 사실상 토론이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 이전까지 네이버 댓글은 그런대로 볼만했습니다. 한줄 댓글을 만들어놓았을 때는 문제가 심각했지만 댓글 시스템을 개편하고, 추천시스템을 도입하면서부터 최소한의 글들은 필터링이 되었고 대략 여론이 어떤지 감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댓글들을 통해 얻는 정보량도 상당했었구요. 물론 대부분의 경우 쓰레기 같은 댓글들이 1/3 혹은 절반을 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읽는 사람이 어떤 태도냐에 따라서 충분히 옥석을 가려내고 정보를 판단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굳이 댓글을 없애야 했을까요?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모든 정치기사가 대선 관련 기사가 아닐텐데 정치로 분류된 모든 기사에서 댓글을 뺀다는 것도 좀 우스운 일입니다. 게다가 다른 섹션으로 분류된 기사에는 댓글을 달 수 있습니다.
아래 기사는 항간에 회자되고 있는 정윤재씨가 '사회' 기사로 분류된 것이고 그 밑에는 댓글을 달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정책의 잣대가 대단히 자의적이라는 것이지요. 다른 포털들은 어떤가 살펴봤더니, 댓글 체계에 별 변화가 없습니다. 즉 네이버만 단독으로 시행한 것 같습니다.
왜 이런 말도 안되는 정책을 시행했을까 생각해보면 가장 일차적으로는, 대선 시기 정치권에서 받는 압력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편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봅니다. 혹은 선관위의 보이지 않는 압력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안그래도 정치권으로부터 온갖 주문들이 많을텐데, 괜한 댓글 하나로부터 선관위로부터 경찰로부터 온갖 간섭들이 들어올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미 메인에 노출할 글을 어떤 글을 선택하느냐부터 정치적인 판단이 들어가 있지 않습니까?
어쩌면 댓글을 막아 여론의 활성화를 차단하려는 의도가 있었을까요? 그런 면에선 어떻게든 인터넷 여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한나라당이 추진한 여러 인터넷 관련 정책들과 맥락이 맞아 떨어집니다. 설사 이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그 효과 면에서는 비슷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여론통제'라는 효과 말입니다.
긍정적인 여론보다 부정적인 여론이 더 빨리 확산된다는 측면에서 입소문이 차단되었을 때 가장 큰 수혜를 보는 곳은 가장 구린 구석이 많은 동네일진대 비록 네이버가 그런 의도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그 정책이 어느쪽에 유리한지는 길게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지요.
네이버가 댓글을 없앤 정책의 그 효과와 영향력도 몰랐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만 근거없는 추측은 배제하고, 조금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사실상 가장 큰 미디어 파워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에 대해서는 최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네이버의 쌈마이 마인드가 가장 큰 원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정보를 필터링하는 방법은 대단히 많습니다. 네이버가 한줄 댓글을 개편하면서 만든 게시판형 댓글 시스템과 추천시스템도 볼만한 글들을 걸러내는데 꽤 출륭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게 아니어도, 댓글을 필러링할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정보기술이라는 시스템이 어짜피 사회에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댓글 시스템 하나, 추천 버튼 하나, 사소한 UI 변경조차도 사람들의 정보습득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 저렇게 쉽게 댓글을 없애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TTB에 등록하고 서평 몇개 연결했는데 아직 알라딘 책 페이지에는 안나타나네요.
뭐를 잘못한건가 아니면 조금 시간이 걸리는 건가?
어떤 분은 5개월만에 구글에서 수표를 받았다고 올려놓으셨던데...
블로그에 글 써서 1년에 한 30만원 벌면 것도 꽤 쏠쏠한 벌이지요.. ㅎㅎ
일명 디지털 앵벌이라고 해야할까요?
아직은 디지털 앵벌이를 제공하는 곳이 많지 않아서 액수가 얼마 안되지만
아마도 이런 식으로 푼돈을 모을 수 있는 방법은 점차 늘어날 것 같습니다.
혹시 누가 이런 사이트들 정리해놓은거 없나요? 죄다 연결해보면 재미있을 거 같은데...
블로그 글로 광고 수익쉐어한다는 블로터나 프리로그에서도 내부 블로그에서만
글을 받지 말고 알라딘처럼 외부 글들을 받아서 노출하면 좋지 않을까요?
알라딘처럼 API로 연결하거나 아니면 RSS2.0으로 글을 백업해서
클론블로그를 만들어도 될 것 같은데요.
글 쓰고 돈 조금 받기 위해 그 사이트에 블로그를 만들라는 건 너무 옛날 방식 같습니다.
개인들이 디지털 앵벌이로 한달에 돈백 정도를 벌 수 있는 시절은 언제쯤 될까요?
이젠 개인들이 생산하고 확산시키고 평가하는, 즉 개인 = 미디어인 환경이 되었으니
돈백은 아니어도 월 몇십만원 정도 버는 것까지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은, 실명제를 추진하면서 실명제로 인한 폐단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상당히 관대하다는 겁니다. 아직까지도 주민등록번호 노출 문제는 관공서에서 제일 많이 터지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물론 최근에 주민등록 도용 방치 혐의로 엔씨소프트 임원이 입건되었다는 소식이 있긴 하지만, 아마도 솜방망이 처벌하고 끝날 겁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업체에서 공공연하게 아이템판매를 부추기기 위해 주민등록 도용을 방치했다는 얘기들이 돌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더구나 정부기관ㄴ인 관공서에서 터지는 주민증록증 노출 문제는 제대로 처벌된 적도 없고요. 이런걸 먼저 잡고 나서야 실명제 이야기를 할 수 있는것 아닌가요? 현재 상태로라면 실명제는 전혀 안전하지 않습니다. 인터넷에 안전장치를 만들자고 실명제를 도입하는데 그 장치가 안전하지 않으면 어쩌자는 것인지? 인터넷 실명제는 대책없는 탁상공론의 전형입니다. 문제가 있긴 있는데, 가장 쉬운 방법으로 뗌빵하려는 것이죠.
개인적으로는 실명제에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별로 안전장치로 기능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명제의 문제는 실명제가 헛다리를 짚고 있다는 겁니다. 하나씩 짚어볼께요.
인터넷의 익명성이 만들어내는 문제라고 지적되는 것들은 대략 다음과 같이 나누어볼 수 있습니다.
1) (장난, 악의 혹은 실수에 의한) 잘못된 정보의 유통
- 예를 들자면 월드컵 경기 500만 서명이면 재경기한다는 등의 낭설들
2) 명예훼손, 욕설 과 같은 인신공격
- 이건 뭐 예가 필요없겠죠.
3) ‘과도한’ 집단 공격 : 수천개, 수만개의 글, 댓글을 통한 공격.
- 역시 예가 필요없죠. 이에 대해선 '인터넷 마녀사냥'이라는 비판도 종종 있었지요.
4) 사생활 침해
- 더 언급하지 않는 것이 좋아 구체적인 사례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이 글을 볼 정도의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 사건일 겁니다.
5) 피공격자의 '대응 불능' 문제 : 공격이 진행되는 시점 동안, 피공격자는 대응할 여지를 갖지 못한다 등등..
- 이 부분은 거의 논의되지 않았지만 꽤 중요한 부분입니다. 사실 많은 경우 몇번의 진실한 대응이면 크게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도 공격 대상자들이 대응할 수 없는 여건에 놓여있는 상황이어서 어쩔 수 없이 공격에 방치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나씩 따져보자면...
1) 첫번째, 두번째는 반드시 익명 때문은 아니지만 익명에 의해서 조장되는 것은 분명한 사안입니다. 누군가 익명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또 누군가 그것을 퍼나르고 그 과정에서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바탕으로 사람들이 행동하게 되는 일이 종종 일어나지요. 그런데 실명제를 한다고 이것이 확 줄어들까요? 사실 저는 좀 의문입니다. 인터넷 전체를 실명화하지 않는 한, 소문 커뮤니케이션이가지게 되는 어쩔 수 없는 맹점 때문에 그럴싸한 이야기에 속거나 혹은 '월드컵 500만 재경기'처럼 자신의 바람대로 속는 사람은 늘상 있게 마련입니다. 명예훼손이나 욕설 역시 실명제를 하면 줄어들겠지만 역시 인터넷 전체가 실명이 되지 않는 한 해결되지 않는 문제입니다.
2) 세번째의 경우는 엄밀하게 말하자면 과도한 집단공격은 익명성 때문에 심해지기는 하지만, 익명성이 과도한 집단공격을 만들어내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싸이월드에서 벌어지는 집단공격은 실명으로 행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판하는 이들이 비판대상에 충분한 도덕적 우위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이 될때, 혹은 사회적인 분위기가 정당성을 부여하는 쪽으로 형성이 될 때 '실명'으로 공격할 가능성은 더더욱 커집니다. 즉 과도한 집단공격은 실명제로도 해결이 안된다는 겁니다. 이런 현상을 저는 "군중화에 의한 익명화"라고 명명합니다. 즉 사람들이 다수가 모여있으면, 그 개개인들을 식별할 수 있다고 해도 사실상 익명으로 취급할 수밖에 없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오프라인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참여가 쉬운 인터넷에서는 이런 효과가 더욱 커지지요.
3) 네번째의 경우는 더더욱이나 실명제와 거리가 멉니다. 물론 익명성이 사생활침해에 대한 개인의 표출을 더 쉽게 만들긴 하지만, 본질적으로 실명제와는 무관합니다. 오히려 이것은 네트워크론에서 이야기하는 "Small World" 메커니즘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인터넷으로 인해 우리가 사는 세상은 더 좁아졌고, 이제는 여럿이 모이면 사진 한장으로도 그가 누구인지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좁아졌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입니다. 이 문제는 네트워크가 촘촘해지고 조밀해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지 익명성이 만들어내는 것은 아닙니다.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인터넷이 들어오면서 우리가 사는 한국사회는 이전의 '국가 단위의 커뮤니케이션 공간'에서 '마을 단위의 커뮤니케이션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4) 다섯번째의 경우는 더더욱 익명성과 무관하지요. 대부분의 집단행동에 대해 그 행동의 대상자는 무기력합니다. 이것은 여러가지 이유 때문인데, 몇가지 경우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하나는 사건의 진행을 모르고 있을 경우, (이런 경우 많이 있죠)
(2) 두번째는 사건의 진행을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을 경우,
(3) 세번째는 알고는 있으나 인터넷을 몰라 대응할 방법을 모르는 경우.
(4) 네번째는 본인이 양심상의 이유나 명백한 증거 때문에 대응을 포기했을 경우
(5) 다섯번째는 너무나 갑작스런 대응에 놀라 미처 대응할 생각을 하지 못할 경우. (즉 이런 사건을 경험해본 적이 없어서 대응할 엄두를 내지 못할 경우 - 많은 경우가 이런 경우이겠죠)
이외에도 몇가지 사례가 있겠지만, 이런 당사자의 대응의 무기력함-당사자의 책임 때문이 아니라 개인이 대응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나게 빠른 속도와 많은 양의 공격 때문에-은 종종 사태를 더 악화시키기도 합니다. 많지는 않겠지만 어떤 경우는 블로그나 미니홈피에 말 몇마디가 사태를 가라앉힐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답답한건, 이렇게 다양한 인터넷의 문제들을 정부는 모두 '실명제'라는 것 하나에 촛점을 맞추고 대책없는 방안을 강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최소한 어떤 문제가 어떤 이유 때문에 생겨나는지, 그 메카니즘에 대한 분석 정도는 있어야할텐데 말입니다.
실명제를 둘러싸고 말들이 많다.
정부는 이참에 실명제 해야한다는 걸 내심 작정한 모양이고, 꽤 많은 네티즌들은, 일부 설문조사에서 60%가 넘을 정도로 꽤나 헤깔리는 모양이고, 애초부터 인터넷은 익명과 더 가깝다는 철학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계속 반대하는 모양이다. (물론 이중엔 인터넷의 익명성 문제 때문에 판단을 유보하는 사람들도 있는 듯하다.)
내가 보기엔...
1. 실명제 공간에서 민주주의 이상없다.
1. 열린 공간으로서의 인터넷, 민주주의와 관련된 측면에서라면 실명제를 별로 걱정할 것 없다. 익명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실명제에 대해 우려하는 내용은 그것으로 인해 사람들의 발언이 위축되거나 혹은 인터넷으로 확장된 민주주의가 축소될 것이라는 염려이다. 그러나 이미 사람들이 내놓고 발언하는 것은 대세이고 뒤로 돌릴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을 실명으로 바꾼다고 뒤로 물러나지는 않는다. 어쩌면 사소한 일들에 대한 리플이나 의견표현은 줄어들 수도 있다. 그러나 촛불시위나 탄핵과 같은 사안에 커다란 대해서도 사람들이 실명 쓰기를 두려워할까? 더구나 실명 발언이 천명이 되고 만명이 되면 그들에게 책임을 묻는다는 것 자체가 어려워짐으로써 사실상 익명이 되는 효과를 갖는다. 즉 원칙적으로는 검열하고 압력을 넣을 수 있지만 너무 많기 때문에 검열거나 압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마 그럴 경우 정부의 중요한 사안에 대한 리플은 거의 실시간 서명운동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런 큰 사건을 통해 실명발언이 하나의 문화가 되면 그것은 점점 더 아무렇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아주 간단하게 2002년 대선 전, 한나라당 앞에서 명함으로 도배를 하던 노사모를 보자. 실명을 까놓고 대드는 것이 얼마나 위력적 것인가를...
정부는 실명제를 통해 세상을 조금 조용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모양이다. (여기서 조용하게란 이중의 뜻이 들어 있다. 하나는 정부에 대한 시끄러운 목소리를 줄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기적으로 폭발하는 인터넷의 '이슈'들을 줄이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실명제를 실시하든 안하든, 정부에 미치는 영향은 이전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거의 실시간 실명 서명운동이 진행됨으로써 정부는 더더욱 곤혹스러워질 수도 있다. 실명 비판한 사람들을 일일이 추적해서 압력을 가한다고? 그것이 세상에 알려지는 날에는 압력을 가한 자들-특히나 실무자들의 목아지가 달아날텐데?
더구나 사람들이 실명을 걸고 리플을 썼을 때, 이 때 싸움은 물러설 수 없는 것이 된다. 가명이나 익명은 사람들에게 치고 빠지게 만들 수 있지만, 실명은 그 사람의 현실공간에서의 정체성과 자존심 문제이기 때문에 '비겁함'을 용인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때 벌어지는 싸움은 지금보다 훨씬 더 치열하고 과격하고 파괴적인 형태의 싸움이 될 것이다.
과연 정부는 이 압력을 버틸 수 있을까?
사생활 노출/침해 - 실명제 실시 때 예상되는 진짜 문제
실명제를 함으로써 예상되는 더 큰 문제는 바로 사생활 침해이다. 국가와 정부에 의한 사생활침해도 있을 수 있지만, 지금까지 인터넷의 경험으로 보건대, 국가와 정부에 의한 사생활침해는 그 사건을 드러냄으로써 항의를 하거나 혹은 막을 수 있지만, 개인에 의한 개인의 사생활침해 혹은 집단에 의한 개인의 사생활침해는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실명제를 추진하는 쪽에서는 이에 대해 아무런 대책도 없다. 마치 실명제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될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실명제로 벌어질 진짜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악의적인 개인 혹은 놀이감을 찾는 개인, 집단에 의해 생겨나게 될 피해자들의 범위가 급격히 확대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개똥녀 사건이나 X-File 사건은 익명과는 별 상관없는 일이다. 그것은 인터넷이라는 지구적 범위의 네트워크가 그런 사건을 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익명을 실명으로 바꾼다고 그런 사건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그리고 또 한가지. 앞으로 실명제 도입에 따른 사생활 피해에 대해서는 국가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논리가 법적으로 성립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국가에서 실명제를 강요했기 때문이다.
실명제가 제기하는 다른 문제
이런 이유 때문에 나는 실명제를 둘러싼 논쟁은 우리 자신에게 다른 문제를 제기한다고 생각한다. 이전까지 민주주의 혹은 사회정의를 둘러싼 논쟁과 싸움은 대부분 '부도덕하고 폭력적인 정부 vs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시민들'의 구도였다. 그러나 이미 한국사회의 인터넷 민주주의는 정부의 정책을 변화시키고 정권까지도 변화시켰다. 문제가 드러난 관공서는 폭격을 맞고 잘못을 저지른 책임자는 과도하리만큼 심한 개인적 피해를 감수해야한다. 과도하게 표현하자면, 정부에 대한 감시권은 서서히 시민들에게 이전되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진짜 문제는 이제 이 사회 구성원들 내부의 문제로 돌아온다. 사생활침해 문제나 온라인 폭력문제를 실명제로 풀 수 없는 것이라면, 결국은 이 공동체 내부 구성원들의 평균적인 윤리의식의 문제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예전에는 수많은 폭력과 부정과 비리의 이유들이 국가와 정부로 귀결되었으나, 이제는 개인을 괴롭히는 수많은 이유들 중 많은 부분이 바로 다른 개인들, 즉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이 평균적인 윤리의식이 바뀌기 전에는 사회는 더 이상 바뀌지 않는다.
싸움의 지형이 변화되었고 변화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국가와 정부, 체제를 둘러싼 싸움에서 이제 서서히 우리 공동체 내부의 평균적인 의식을 구성하는 개인들의 윤리의식이 도마 위에 올라야 한다는 말이다. 나를 포함해서....
인터넷 실명제가 얼마나 위험천만한 발상인지 아래 글을 보세요.
http://agorabbs1.media.daum.net/griffin/do/debate/read?bbsId=D110&articleId=55601&pageIndex=1&searchKey=&searchValue=
댓글을 달아 주세요
댓글 RSS 주소 : http://blocho.com/rss/comment/2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