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번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직접민주주의'를 언급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촛불문화제와 관련 12일 "이 새롭고 엄청난 경험이 평화적으로 행해져 성공을 거두면 21세기 세계의 민주주의에 큰 감동과 영감을 주고 새로운 진로를 제시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6.15 남북공동선언 8주년 기념 특별강연과 만찬'에서 "2000년전 그리스 아테네에서 시작된 직접 민주주의 이래 처음으로 수천만 국민의 참여와 관심 속에 한국에서 다시 그 직접 민주주의를 경험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직접민주주의는 인터넷과 문자메시지를 통한 온라인과 거리에 모인 촛불문화제의 오프라인의 연대 속에 행해지고 있다"며 "우리는 수많은 희생을 바치면서 피를 흘려 민주주의를 쟁취했고, 이제 한국에서 독재가 다시 일어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
DJ "촛불문화제 성공하면 세계 민주주의에 큰 감동")

이 말은 처음이 아니다. 이미 지난 6월 4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촛불문화제는 직접민주주의가 실현된 중대한 변화고 말한 바 있다.

같은 말을 두번 반복했다는 건, 그 말에 대한 확신이 있다는 이야기이고
이 시대에 전달해야 할 메시지라는 판단이 있다는 뜻이다.

이 블로그에서 누차 이야기하지만
지금의 촛불문화제는 한국사회가 직접민주주의로 이행하기 시작한
바로 그 첫 출발점을 보여주고 있다.

네트워크로 실시간으로 정보를 주고받는 개인들, 즉 네트워크화된 개인들이
한국사회에서 일상적으로 대규모로, 집단적으로 생겨나고 있으며
그들이 이제 사회의 핵심 권력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직접민주주의'라고 말한 것은 단순한 수사학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 한국사회의 정치적 지형이 어디에 있고 앞으로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정확히 꿰뚫어 이야기한 것이다.

최첨단 IT 문화가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한국에서
20세기의 대의제 정치모델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정치모델이 탄생하고 있는 그 현장을
이 노회한 정치인이 꿰뚫어본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치권에서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언론 역시 마찬가지다. 사실은 저 발언은 앞으로 한국 민주주의의 지향점을 제시하는
나침판으로 1면에서 언급되었어야 할 내용임에도, 단지 지나가는 기사로 처리되고 있다.  

적어도 기존의 지도층에서 지금의 상황을 꿰뚫고 있는 사람은 없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직접민주주의란 어짜피 몇몇 정치인이 아닌
바로 수천만명의 개인들이 만들어가는 것!
그것은 소수의 사회 지도층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이끌어가는 이전 사회와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다.
그러니 과거의 '지도층'들이 이 현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할지도...

분명한 것은 직접민주주의는 이미 비가역적인 형태로 우리 앞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과제는 직접민주주의로 이행해가는 과정을 어떻게 가속화시킬 것인가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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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3 10:18 2008/06/13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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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월 필리핀의 에스트라다 정권은 휴대폰 문자 메시지로 무너졌다. 언론까지는 통제했지만 핸드폰 문자는 통제하지 못했던 에스트라다 정부는 문자메시지로 시위소식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대통령 관저 앞으로 모여든 수만명의 사람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만 것이다. 당시에도 시위가 커지기 전까지 언론에서는 시위 소식이 거의 나가지 않았었다고 한다.

실시간을 가능케 하는 새로운 미디어를 활용한 사회운동은 필리핀이 처음이 아니다. 그 이전에 1999년 시애틀에서 있었던 WTO 체제 반대 시위대들도 비슷한 방법을 활용했다. 시위대들은 회의 장소를 봉쇄하기 위해 휴대폰으로 연락을 주고 받고, 거리에서 노트북으로 무선인터넷에 접속하여 실시간으로 시위정보를 주고받으며 행동을 조율했다. 결국 그들은 회의 장소를 봉쇄하였고, 당일날 예정되었던 WTO 세계 각료회의를 무산시켰다. 일부 국가의 정상들이 교통이 막혀 회의 시간에 회의장에 나타나지 못한 것이다. 이것은 수만명의 시위대가 경찰의 엄청난 봉쇄에도 불구하고 서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거리 곳곳을 누비며 행동을 조율한 결과이다.

실시간 커뮤니케이션 도구를 활용해 오프라인에서 실시간으로 서로의 행동을 조율하는 집합적인 움직임은 이미 한국사회에서도 한번 있었다. 97년 총파업 때 대규모 집회를 하기 위해 모여들었던 노동자들은 정부가 집회 장소를 봉쇄하자 실시간으로 핸드폰을 통해 집회 장소를 연락받고, 다른 장소로 움직였다. 경찰은 그날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정보를 주고 받는 속도 그리고 그 정보에 따라 움직이는 속도가 경찰보다 빨랐기 때문이다.

이렇듯 오프라인에서 개인들이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며 실시간으로 행동을 조율하는 것. 인터넷과 핸드폰이 아니라면 불가능했을 일들이다.

그리고 바로 정확히 그 현상이 한국에서 다시 재현되었다. 문자로 실시간 커뮤니케이션 하는 이들. 인터넷으로 온갖 정보들을 섭렵하고 토론하고 판단한 후, 오프라인에서는 문자로 서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움직이는 사람들.

1999년의 시애틀, 2001년의베트남과 지금이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 세대는 그런 기술을 처음 경험한 것이지만, 지금 한국의 네티즌들은 일상적으로 그런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언제든지 네트워크에 접속하고 소통할 수 있는 기술과 그것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줄 아는 사람들.

한번 집회 장소를 봉쇄해보라. 어떻게 될 것인가? 아마도 이들은 처음에는 봉쇄된 공간에 당황하겠지만, 그 다음번 집회에서는 아마도 순식간에 정보를 공유하고 비어있는 다른 공간을 점령할 것이다. 도저히 경찰들이 예측할 수 없는 형태로 군중들이 움직일 때, 봉쇄나 저지는 무력화되고 만다.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 움직임의 속도가 이쪽이 더 빠른데 어떻게 봉쇄할 수 있단 말인가?

네트워크에 연동하여 움직일줄 아는 사람들, 실시간 정보 공유와 수평적인 토론, 적어도 토론 공간에서는 나이도 남녀도 불문하고 같은 위치에서 토론할 줄 아는 훈련된 사람들... 오프라인에서는 휴대폰과 인터넷으로 실시간으로 정보를 확인하며 움직일 줄 아는 사람들. 이들이 바로 2008년에 한국 사회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네트워크화된 개인들'이다. 

특히 80년대에 태어나 초등학교부터 컴퓨터를 사용하기 시작한 지금의 중고등학생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네트워크 세대이다. 우리는 바로 그 네트워크 세대가 우리 사회 전면에 등장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다.

고립된 소규모 집단 속의 개인이 아닌, 전체 공동체와 연결된 '네트워크화된 개인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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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2 19:09 2008/06/12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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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직접민주주의에 대해서 슬슬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는군요.

“끝까지 국민 무시한다면…” 소환제 도입 목소리  

그 외에도 슬슬 직접민주주의를 언급하는 기사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대의민주주의 한계에 근본적 물음 던졌다” 
[세상읽기] 국가적 위기의 원인과 대안 / 박명림
“임시직이 생겼어요, 시민이라는”

이미 이야기했지만 광장에서는 이미 직접민주주의가 시행되고 있습니다.

그것을 직접민주주의라 이야기하지 않지만
사람들이 진지하게 혹은 격렬하게 토론하고 의사를 정리한 후에
다수의 의견이 모아지는대로 움직입니다.

예컨대 어제 집회에 참석했던 어떤 분은 이 과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스티로폼 연단을 쌓으면서 있었던 격렬한 논쟁은 그럴수 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었습니다.

시민들의 생각과 의견이 서로 달랐습니다. 이건 빨간쪽끼를 입은사람들의 정체가 뭐냐(선동가능성의 우려때문에) 혹은 프락치가 개입된것이 아니냐 하는 이런 여타 문제의 소지는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스티로폴 상자를 쌓아서 계단을 만들어 이메가식 소통의 상징인 컨테이너를 한번 밟아보자라고 하는 의견이 대다수였습니다. 사실입니다. 인터넷 생중계로 보신 분들의 대부분이 선동시민 또는 프락찌라고 우려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상황이었죠. 저조차도 잠시동안 혼란이 생길정도였으니까요.

현장에 직접 가보았다면 알겠지만,,, 그 누구도 컨테이너 박스를 넘어서갈거라는 생각은 할 수가 없었을 겁니다. 그 무시못할 높이와 그리고 그 뒤로 수많은 전경들이 대기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볼때 그건 미치지 않고서야 혹은 프락치가 아니고서야 컨테이너박스를 넘어가는 행위는 엄두도 못낼 상황이었습니다.

우리 카페에서도 또 다음 아고라에서도 시위가 계속 진행되면서 비폭력/폭력 문제로 또는 전경버스를 끌어내어 청와대행을 하느냐 마느냐에 따른 상반된 의견이 서로 팽팽하지 않았습니까?

인터넷상에서 이미 벌어지고 있던 이런 일련의 논쟁이 시위현장에서도 여실히 드러난거라 봅니다.

여기서 많은 분들이 생각을 조금만 더 차분하고 신중하게 하셔야 합니다. 이건 절대 분열하는것이  아닙니다. 합의점을 찾기위한 과정인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의 최종목표점으로 나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겪어야만 하는 진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과정을 밤새도록 지켜보면서 저도 고함을 지르고 구호를 외치면서 속상해 하고 또다시 고함을 지르는 과정을 반복해야만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우왕좌왕과 갈팡질팡 하는 와중에도 우리 시민들은 점점 합의점을 찾아가고 질서가 잡히는 모습을 보였고 그 결과는 정말 아름다움 그 자체였습니다.

태극기와 깃발들이 하나둘씩 컨테이너박스위로 올라가고 현수막이 펼쳐지면서 시민들은 박수갈채와 환호성을 보내며 어느새 제 귓가에는 애국가가 울려퍼졌습니다.

그 현장에 서 있던 모든분들은 아마 느끼셨을꺼라 생각합니다. 정말 감동에 감동에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원문 : http://cafe.daum.net/antimb/KDf2/1279)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의견이 갈렸다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의견을 조율하고 공통의 해답을 찾았다는데에 있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바로 그 현장에서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지요.

저는 이것이 바로 직접민주주의라고 봅니다. 서로의 이해관계와 감성과 생각과 정보를 공유한 후, 집단적으로 판단하는 것이지요.

물론 이런 과정들이 훨씬 더 규모가 큰 '정치적 의사결정'의 과정에 적용되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하지만 어쨌든 우리는 그 첫 발자국을 뗀 것입니다. 2천년전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되었고 역사상 단절되었던 "진짜 민주주의"를 향해서 말입니다. 지금 제기되고 있는 '국민소환제'는 바로 직접민주주의의 첫걸음입니다.


국민 소환제 서명하러 가기 : http://gobada.co.kr/2mb_sig/sig.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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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1 14:03 2008/06/11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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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직접민주주의다!


1. 거리의 정치는 이미 대의제를 넘어섰다. 예전의 관성으로 거리에서 '대중'들을 '지도'하려 했던 시민단체들, 운동단체들은 이 놀라운 상황에 어찌할바를 모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들이 움직이는 방식도 일종의 대의제였기 때문이다. 대신 싸우고 사람들을 지도하고 이끌고, 경찰과 타협하고 사람들의 동선을 조율하는 것. 사람들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단체들, 운동단체들이 조율하는 것이 바로 대의제였고, 이것이 그 동안 우리 운동이 진행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거리의 정치는 이미 그것을 뛰어넘었다. 지도부가 없다. 누군가 마이크를 들고 '지도'하려고 하면 기어코 마이크를 꺼버린다. 그 누구도 이 공간에서 지배력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너와 나의 동등함. 그 동등함으로 그 공간에 같이 존재하자는 것이다.

그렇다고 질서가 없는가?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아름다운 시위는 본 적이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사람들은 무엇을 하면 되고 무엇을 하면 안되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경찰의 무수한 폭력에도 폭력으로 맞대응하는 것이 결코 도움이 안된다는 것을 잘 알기에 철저하게 자신들의 행동을 조율하고 있다. 누군가 사고를 칠 것 같으면 바로 격리시켜 버린다.

거리행진의 방향도 결정된 것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방향을 잃지도 않는다. 약간의 혼란이 있지만 곧 합의를 하고 움직인다. 결정은 바로 그 현장에서 이루어진다.

이미 거리에서는 직접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있다.  웬만한 사람은 눈치채지 못하는 이 거대한 변화를 은퇴한 노정객이 알아챘다.

""촛불집회, 직접민주주의 실현... 그리스 아테네의 직접 민주주의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2. 촛불문화제 전으로 돌아가 보자. 이 많은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광장에 모이게 되었을까? 그것은 순수하게 자발적인 움직임이었다. 광우병 쇠고기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울분, 그리고 광우병의 증거를 찾기 위해 정보를 확인하고 확인된 정보를 확산시키기 위해 키보드를 두드렸던 수백만개의 손가락들... 그것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마침내 수만개의 촛불로 변화되었다. 그 시작에는 어떤 지도부도 없었다. 어떤 지령도 없었다. 지침도 전략도 없었다. 수십만, 수백만의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움직이며 정보를 모으고 공유하고, 잘못된 정보를 확인하고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자신의 입장을 수정하고 최종적으로 거리에 선 것이다.

이 과정 속에는 어떤 대의제도 존재하지 않는다. 자기 스스로가 자기 스스로를 대표할 뿐! 나는 내가 본 것과 들은 것과 생각한 것과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속에서 나 스스로를 대표하기 위해서 광장에 선 것이지, 다른 어떤 누군가를 대표하기 위해서 혹은 다른 어떤 대표자를 뽑기 위해서 모인 것이 아니다.

바로 그렇기에 사람들은 기존 시민단체들의 익숙한 행동들에 제동을 걸 수 있었다. 공간을 너무도 크게 장악해버리는 깃발을 내리게 만들고, 커다른 피켓을 작은 피켓으로 대체시키고, 획일적인 문구를 다양한 주장으로 그리고 급기야 관성적으로 공간을 장악하려는 시민단체들의 마이크를 꺼버렸다. 나를 대신할 누군가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위대를 이끄는 건 경험많은 시민단체 회원, 운동단체 회원이 아니다. 바로 시민들 그 자신들이다.

직접민주주의!
이것이 바로 거리에서 작동하고 있는 직접민주주의이다.


3. 단지 거리뿐일까? 간접민주주의의 이론적 근거는 국가 단위의 영토와 국민수 정도가 되는 공간에서
1) (인터넷 이전의 사회에서) 다수의 사람들이 동등한 정보를 비슷한 순간에 공유할 수 없다는 것
2) 비슷한 정보를 공유하더라도 그 정보를 기반으로 한 다수의 판단이 빠르게 집적될 수 없다는 것, 따라서 다수의 의견을 모두 취합하기에는 의사결정이 너무 늦어지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다수의 의견을 모두 취합하는 (직접민주주의적인) 방식을 채택할 수 없다는 것
때문이었다.

<국민 주권>이라는 민주주의의 원래 이념에 비추어 간접민주주의는 사실상 주권을 위임하는 것이기에 민주주의의 원래 의미에서 벗어난 것임에도 불구하고, 간접민주주의가 작동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리고 역사상 있었던 그 무수한 직접민주주의 실험들이 실패했던 것은 이런 현실적인 장벽들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 이런 현상은 모두 역전되어 버렸다. 인터넷을 통한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은 근대국가라는 커다란 공간적인 거리를 더 이상 의미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공간을 뛰어넘는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로써 '다수의 사람들이 동등한 정보를 비슷한 순간에 공유할 수 없었던' 간접민주주의 첫번째 조건이 해체된다.

수십만, 수백만명의 의견이, 현실에서 필요한 실행의 속도를 방해하지 않고 수렴될 수 있을까? 당연하다. 이미 지난번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때 모바일 투표로 이에 대한 실험이 진행된 바 있다. 투표? 그것은 단지 형식적인 행위일 뿐이다. 사실 인터넷 게시판에 쏟아지는 댓글은 빠르면 하루 만에 민심을 파악하게 만든다. 이런 빠른 커뮤니케이션 덕분에 숭례문 화재 사건 때 이명박의 '성금 재건' 발언은 하루만에 취소되고 말았다.  

사실은, 이미 우리 사회 내부 구성원들의 의사소통 속도는 직접민주주의 단계에 와 있다. 늦어지는 것은 오히려 정치권이다. 사회 내부에서 형성되는 의사소통과 판단의 집적이 간접민주주의에 기반한 지금의 정치권보다 훨씬 빠르기 때문에, 정치권이 사회 전체 의사소통의 속도를 막고 있는 형국이다. 즉 우리는 인터넷에 기반한 직접민주주의적인 미디어 환경에서 간접민주주의 정치제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즉 직접민주주의는 우리가 만들어야 할 지향점이나 이상향이 아니라, 환경, 인터넷 위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커뮤니케이션 환경이다.

따라서 우리는 사회 전체의 자원 분배 역할을 하는 정치적 의사결정이 민의가 형성되는 속도에 맞추기 위해서는 직접민주주의를  도입하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안된다면, 우리는 계속 의사결정이 지체되는 현상을 겪게 될 것이고 이것은 곧 사회 전체의 지체라는 문제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사실, 우리가 쇠고기를 통해 겪고 있는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사회 전체 의사결정의 지체!
이미 민의가 무엇인지는 분명해졌는데도 그것을 반영할 방법이 없으니 한달째 이러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터넷 시대의 커뮤니케이션 환경에 맞도록 정치제도를 바꾸는 것은 대단히 시급한 과제이다. 즉 우리는 이제 직접민주주의를 이 땅에 구현해야하는 환경을 맞고 있다.



4. 무엇을 할 것인가?

직접민주주의로 가는 길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직접민주주의에 회의적인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고, 직접민주주의를 두려워하는 기득권 층의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이며, 국가의 중요한 사안들을 보통 사람들의 평균적인 판단으로 결정하는 메커니즘에 대해 엘리트 지식인들의 회의적인 시선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인터넷 상에서는 직접민주주의를 향한 구호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http://www.gobada.co.kr/2mb_sig/sig.php 참조) 

국민 소환제!
국민 탄핵제!
국민 발의제!

지금 우리에게 '국민 탄핵제'라는 권한만 있었어도 이 사태는 아주 쉽게 해결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한달이 넘는 기간 동안 수만명이 거리에서 뛰어다니고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릴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 직접민주주의를 정면으로 제기해야 한다. 만약 앞으로 개헌이 있다면, 우리는 직접민주주의의 가장 기초 항목인 국민 소환제, 국민 탄핵제, 국민 발의제를 관철시켜야 한다.


우리의 지향점은 분명하다. 21세기, 세계 정치사의 새로운 혁명, 직접민주주의가 우리의 눈 앞에 와 있다. 직접민주주의는 2천년 전 고대 그리스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지고, 이제 이 땅에서 두번째 만들어지는 것이다. 기원 이후 처음 있는 역사적 사건이 바로 우리 앞에서 일어나고 있다. 2천년 전 그리스의 메타포를 채용한 다음의 아고라는 단지 어느 한 인터넷 업체의 단순한 서비스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2천년 전의 전무후무한 역사적 경험을 다시 불러오고 있다는 상징적인 공간이며, 개인들의 직접행동을 이끌어낸 직접민주주의의 예비공간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금의 우리 모습을 자랑스러워할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바로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직접민주주의가 십년 후에 세계의 정치체제를 바꿀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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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5 23:14 2008/06/05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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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 직접민주주의의 돛을 올리다!


거리에서 '탄핵'이란 소리가 넘쳐흐른다. 다음 아고라에서 시발된 탄핵의 목
소리는 꺼질 줄 모른다. 이명박 본인이 만든 청계광장을 가득 메운 촛불
현재의 민심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이 촛불은 쉽게 사그라들 것 같지
않다.


사기업인 인터넷 포털 다음에서 진행되는 법적인 구속력이 없는 포털 서비스
에서의 서명운동이지만, 이미 그 서명을 통해 표현된 의지만 120만명을 훌쩍
넘겼다. 갈길이 태산이다. 의료보험 민영화, 공기업 민영화, 대운하, 자사고
설립 등등... 무엇 하나 걸림돌이 아닌 것이 없다. 이명박 정부는 특유의 추
진력으로 100m 달리기를 하러 나왔는데, 알고 보니 장애물 경기장에 들어선
것이다. 과연 이 경기의 끝은 어떻게 될 것인가? 누구도 그 끝을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미 우리에게 '탄핵'이란 단어는 낯선 단어가 아니다. 2004년 우리는 이미
대통령 탄핵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
다. 무엇보다, 그때는 국민의 '대리인'인 국회의원들이 탄핵을 시도했었고,
대리인들의 탄핵 시도는 바로 '주권재민'의 주체인 국민들에 의해 저지되었
다. 그런데 지금은 '주권'을 가지고 있는 국민들이 탄핵을 주장하고 있다.
탄핵의 주체가 달라진 것이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커다란 간극을 발견한다. 바로 '주권을 가진 국민들'과
'국민들의 정치적 대리인들' 사이의 간극 말이다. 이 간극은 이미 2004년의
탄핵에서 한번 확인된 바 있다. 그리고 2008년 우리는 이 간극, 바로 민심과
정치집단 사이의 괴리를 다시 한번 확인한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원론에서는 '주권을 가진 국민들'과 '국민들의 정치적 대
리인들'이 서로 밀접하여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상정되어 있다. 적어도 원론
적으로는 마치 그 둘이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서로를 끌어주는 것
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대의제 민주주의 이론이 어떻든, 현재 시점에 그 둘
사이는 서로 들떠 있다.


국민들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된 바로 그 대통령을 배출한 한나라당이 민심
으로부터 이반되어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야당은?
민주당으로 대변되는 야당 역시 국민들의 민심으로부터 붕 떠있기는 마찬가
지다. 그들은 민심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민심 뒤에 숨어 눈치를 보고 있
다. 탄핵의 대상이 된 여당과 민심을 읽지 못하는 부실하기 짝이 없는 야당
만이 존재하는 지금, 지금의 상황만을 놓고 본다면 아마도 사람들이 직접 나
선 것은 자신을 대변해줄 변변한 야당도 없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가능할 것
이다. 즉 제대로된 야당이 있었다면 '민심'을 대변해 줄 수 있었으리라는 가
정, 그래서 대의제 민주주의가 여전히 유효하게 작동했으리라는 가정 말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우리가 꼭 짚어보아야할 또 다른 중요한 요인은 없을까?
'국민들의 대리인'이 모인 정치권에서 그 누구도 언급하지 않았던 탄핵이
국민들의 입에서 자발적으로 나오기 시작하고,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왔
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그것은 첫번째, 지금 현재 한국에서 국민의
민의를 대변하는 대의제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두번째 더
중요한 것은 이제 국민들 스스로 탄핵을 제기할 수 있을 정도로 직접적인 참
여가 가능한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사실 첫번째 문제는 대의제가 거
의 언제나 잘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다지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두번째, 불과 일주일만에 국민들의 직접적인 참여가 가능해지는 환경은, 우
리에게 전혀 새로운 것이다.


지금의 상황을 다시 한번 돌이켜 보자. 야당이 아주 소극적으로 쇠고기 협상
을 비판하고 있을 즈음, 최초의 촛불문화제였던 5월 2일 청계광장의 집회 소
식이 인터넷을 통해 퍼지기 시작한 건 정말 일주일도 채 안되는 일이었다.
그 일주일 사이에 사람들은 스스로 정보를 공유하고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공감대를 만들고 급기야 수만명의 인파를 청계광장의 촛불로 연결시켰다. 그
런데 이렇게 사람들이 순식간에 참여하는 환경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사
실 촛불의 시발점이었던 '미선이 효순이' 추모 집회는 집회가 제안된지 불과
3-4일만에 조직되었다. 숭례문 화재 때 '국민 성금으로 숭례문을 재건하겠다
'는 발언은 인터넷에 쏟아지는 여론의 폭탄을 맞았고, 바로 그 다음날 철회
되었다. 불과 하루만에 말이다.


이제 우리는 어떤 이슈가 공론화되는 것은 하루면 충분하고, 큰 사안인 경우
에도 다수의 사람들이 정보를 습득하고 공유하고 토론하고 입장을 정리하고
행동에 나서기까지 이 모든 과정들이 일주일이면 가능한 시점에 다다른 것이
다. 즉 국민들의 집합적인 의사형성 및 표현 시간은 점점 짧아지고 있으며,
이는 곧 대의제 정치인들이 이를 수렴하여 정책에 반영하는 시간과의 차이가
점점 더 격차가 벌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이 바로 속도! 즉 국민들이 공론을 형성하고 의사를 표현하는 시간이
불과 일주일 안팎으로 당겨지는 지금의 커뮤니케이션 속도를 '직접민주주의
가 가능해지는 환경'이라고 본다. 기존의 정치권은 민심 위에 들떠있고, 국
민들은 직접적인 참여를 할 수 있는 환경! 이런 환경 속에서 대의제 민주주
의는 이제 더 이상 인터넷으로 형성되는 민심의 속도를 좇아갈 수 없다.
정치권이 국민들의 요구를 따라갈 수 없고, 국민들은 직접 참여할 수 있는데
굳이 대의제 민주주의에 머무를 필요가 있을까?


역사적으로 대의제 민주주의가 광범위한 동의를 얻은 것은, 근대국가 정도의
넓은 공간과 최소 수백만에서 수억에 이르는 인구수를 가진 공동체에서 개인
들끼리의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하고, 따라서 공동체 안의 중요한
사안들에 대해 빠르게 의견을 수렴하고 의사결정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즉 대의제 민주주의의 존재 의미는 대의제가 근대 국가 내부에서
커뮤니케이션 속도의 시공간적 제약을 보완할 수 있는 유력한 장치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터넷 시대에 국민들이 직접 사회적인 의제를 설정
하고 공론을 형성하고 직접 행동을 하는 상황에 이르러, 개인들이 인터넷으로
휴대폰으로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는 상황에 이르러, 우리에게 대의
제 민주주의가 적합한지에 대해서 우리는 심각한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대의제로 민의를 반영하는 속도와 국민들이 스스로 공론을 형성하고
행동에 나서는 속도의 차이는 점점 격차가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터넷이 도입되면서 직접민주주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이야기는
이미 1990년대 초반부터 자주 거론되었던 이야기이다. 아니 이미 1960년대에
맥루한은 전기시대에 이르러 대의제 민주주의가 직접민주주의로 바뀔 것이라
고 예언한 바 있다.


정보의 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정치는 대표를 선출하여 결정권을 위탁하는
경향에서 벗어났다. 전 사회 공동체가 의사 결정이라는 중추적 행위에 직접적
으로 관여하게 된 것이다. 정보의 속도가 느려지면 대리자나 대표자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대리자들을 내세움으로써, 사회의 다른 사람들이 처리되고
고려되기를 바라는 공공의 관심사에 대한 여러 분야의 견해들을 내세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전기의 속도가 이러한 대리, 대표 조직에 도립될 때, 이미
구식이 되어버린 이러한 조직은 속임수와 임시변통이라는 방법으로 간신히 그
기능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맥루한, <미디어의 이해>)


맥루한이 예언했던 바로 그 현상이 지금 21세기 한국에서 시작되고 있다.
나는 이미 다음 아고라에서 비공식적이고 비제도적이지만 실질적인 의미의
직접민주주의가 시작되었다고 판단한다. 네티즌들에 의해 직접민주주의의 '
돛'이 올려진 것이다. 만약 그것이 실제 법적인 효력이 있는 서명이라면, 그
끝은 정말 '탄핵'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비공식적인 서명이며, 따
라서 그것이 전체 국민 2/3의 서명을 얻는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로 법적인
구속력을 가지지는 않는다. 지금의 한계는 바로 이것이다 : 민심은 드러나지
만 그것을 반영할 수 있는 제도적인 통로가 존재하지 않는 것. 지금 우리의
문제는 우리 사회의 어디에도 이런 국민들의 직접적인 요구를 수렴할 사회적
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제도화의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이미 우리는 수차례의 경험
을 통해 국민들 스스로 의제를 설정하고 담론을 형성하고 행동을 조직하는
사례를 보아왔다. 이제 우리의 과제는 직접민주주의를 제도화하여 개인들의
집합적인 의사가 실시간으로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직접민주주의가 우리들의 정치체제로 자리잡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직접민주주의의 역사적 원형인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 체제
는 그것이 완성되기까지 3-4백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우리가 인터넷이란
훌륭한 툴을 가지고 있더라도 고대 그리스의 직접민주주의 제도 정도를 완성
하기까지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단지 우리 사회에 직접민주주
의가 필요하고 지금 시점에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공론화하는 데에만도 최
소 몇 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지 않을까? 또한 어떤 형태의 직접민주주의가
우리에게 적합한지를 모색하는데에도 상당히 오랜 시간과 실험과 시행착오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굳이 이 작업을 큰 국가단위에서 시작할 필요는 없다. 가장 먼저
'직접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정당' 같은 곳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사안을 당원들
에게 직접물어 당의 진로를 결정하는 선도적인 실험을 할 수도 있다. 또한
시나 군 단위의 지방자치체에서 작은 규모로 직접민주주의를 시범적으로
시행해볼 수도 있다. 그렇게 작은 영역부터 직접민주주의를 도입하고 그
것을 제도화함으로써 우리는 사회 전반을 직접민주주의 형태로 바꾸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시도가 아주 낯선 것만은 아니다. 이미 우리는 직접민주주의와 유사한
형태의 참여행위들을 경험한 바가 있다. 2002년 유시민씨를 주축으로 만들어
진 개혁당은 인터넷에 기반한 당원들의 직접 투표로 정당의 주요 정책을 결
정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하지만 이 실험은 당원들의 직접적인 의사결정
구조가 완벽하게 보장되지 않았다는 점과, 개혁당이 자리를 잡기도 전에 해
체되고 말았다는 점 등에서 여러가지 한계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더라도
그것은 큰 의미를 지닌 실험이었다. 이것은 비록 정당수준에서 일회적으로
행해진 것이긴 하지만, 인터넷에 기반한 직접민주주의적인 의사결정체계가
정당으로서 정책을 제시하고 의견을 수렴하고 그것을 집행하는데 필요한 의
사결정 속도를 방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국민들의 직접적인 의사를 수렴하는 새로운 기술적인 방안
도 경험했다. 2007년 통합민주당 대선 경선 때 한명숙 전 총리가 처음 제안
한 모바일 투표
는 방법상 다소 어려워보이는 '실시간 여론 수렴'에 대해서
꽤 신뢰성 있는 대안을 실험한 역사상 최초의 사례이다. 그리고 그 이후 민
주노동당과 창조한국당도 모바일 투표를 시행한 바 있어, 향후 실시간으로
민심을 수렴하는 하나의 기술적 장치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해 주
었다.


이것만이 아니다. 인터넷에서 정보 생산과 유통을 원활하게 해주고 보다 더
나은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게 해주고 개인들의 자기표현을 촉진하는
Web2.0 관련 기술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커뮤니케이션 환경을 제공해줄
것이다. 더구나 24시간 항시 네트워크에 접속이 가능한 무선인터넷 환경은
더욱 원활한 커뮤니케이션 환경을 만들어 줄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직접민주주의가 이미 우리 옆에 다가
오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터넷 시대에 대의제 민주주의는 몸에 맞지 않
는 작은 옷이다. 그것은 우리의 활동을 불편하게 만든다. 이제 우리에게 필
요한 새로운 옷, 직접민주주의를 만들어가야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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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11 13:00 2008/05/1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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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가 실시간으로 유통된다는 건
그 정보를 수용하는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것,
실시간으로 동시에 행동할 수 있다는 뜻.

어떤 정보들은 시간이 지나면 그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하거나 행위를 하는데 전혀 쓸모없어지는 정보들이 있다. 예를 들면, 3.1운동 소식이 한달 만에 산골짜기에 퍼졌을 때 그 산골짜기 사람들은 만세운동을 해야할까 말아야할까?

정보 유통에서 실시간이란 문제는 판단과 행동에 있어 시간지연을 없앰으로써 그만큼 신속한 의견취합이나 행동을 가능하게 한다.
또한 이것은 하나의 사안과 그 사안을 둘러싼 여러가지 정보에 대해 그 사안에 관심있는 모든 사람들이 한번에, 한꺼번에 움직일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함으로써 엄청난 폭발력을 가지게 된다. (2002년 촛불시위의 경우)

--> 직접민주주의가 가능하게 되는 조건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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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정치리뷰 - 개혁당이 직접민주주의를 했다면...


2004년 3월, 인터넷은 또 한번 거대한 소용돌이가 치고 있었다. 개혁당의 상머슴 Y씨가 2년 전 공언했던 대로 2004년 총선에서 개혁당이 폭풍처럼 정국을 휩쓸고 있는 것이다. 그 광풍에 국회의석 과반수를 넘게 차지하고 대통령 역할을 하던 한나라당은 풍지박산 문턱에 이르렀다. 자칭 ‘정신적 여당’ 열린우리당도 부안핵폐기장 문제, 이라크파병 등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들에 양다리를 걸치며 눈치를 보다가, 돼지우리당이라는 낙인이 찍히고 말았다. 호남기득권에 목숨을 걸던 민주당은 결국 충청과 호남이 뭉쳐야 산다며 자민련을 부추겨 내각제개헌을 소리높여 외치기 시작했다. 각 정당들은 모두 살아남기 위해 버둥거리며 발버둥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출구는 없었다. 사람들! 사람들의 움직임이 사뭇 달랐다. 언제나 정치권의 움직임에 일희일비하던 사람들이 팔짱을 끼고 이들의 몰락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상 정치판은 핵분열 일보직전 상황이다. 아니, 지금의 상황은 핵분열이 아니라 정치권 전체가 자체붕괴해서 하나의 블랙홀로 빨려들어가는 상황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사람들은 어서 빨리 블랙홀이 만들어져 모든 더러운 것들을 다 빨아들인 채 사라져버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문제는 단지 시간일 뿐이었다.

개혁당 역시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그러나 개혁당에서 문제가 된 것은 전혀 다른 것이었데, 그것은 ‘청소년들에 대한 정책은 당사자인 청소년들이 결정해야한다’는, 상당히 낯선 그러나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이것 때문에 개혁당 뿐만 아니라 온나라가 시끄러워졌다. 조선일보와 유림들은 ‘아직 18세 투표권도 없는 상황에 어린 것들이 뭘 안다고 정책을 논하느냐’며 ‘본업에 정진하라’고 근엄하게 꾸짖었고 중앙일보는 청소년들이 정책결정권을 가지면 노사분규가 더 심해질 것이라며 자중할 것을 요구했다. 한겨레와 오마이뉴스도 청소년은 아직은 보호가 필요한 나이라며 ‘조심스러움’을 가장한 우려를 표명했다. 다만 ‘이 참에 튀어야 산다’는 전략적 판단을 내린 동아일보만이 ‘중고등학생들도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으로 검토해볼만한 의견이라고 사료된다’는 주장을 펼쳤을 뿐이다.

정당들의 반응은 더 가관이었다. 한나라당은 혹시나 젊은 유권자가 더 늘어날까 하는 노파심에 ‘개혁당은 ‘어린애당인가?’라는 논평을 내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열린우리당은 혹시나 개혁당에 젊은 유권자들이 몰릴지도 모른다는 계산에 ‘시기상조’라며 조기진화를 시도했다. 물론 임종석 같이 지금 표밭을 갈아두면 4년 후에 반드시 좋은 성과가 있을 것이라는 계산에 어영부영 당론을 거부한 채, 뻘쭘하게 지지 입장을 표명하는 정치인도 있었다. 민주당은 호남에 청소년들이 별로 없기 때문에 어떻게되든 이득이 별로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민주당 지도부는 제주도 똥돼지마냥 이제 막 붕괴할 한나라당에서 떨어지는 떨거지들을 추수리기만 해도 본전은 뽑을 거라는 계산을 하고 있었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개혁당에서 청소년 교육에 관한 정책을 입안하던 중, ‘쳇!거바라‘라는 아이디를 쓰는 고등학교 자퇴생이 ‘13-18 나이의 청소년이라도 회비를 내는 진성당원에게는 정책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주간투표권-1주일에 한번씩 진성당원들의 인터넷 투표를 통해 당의 정책과 행동사항들을 결정하는 직접민주주의 제도로, 개혁당에서는 전당대회와 같은 급의 최고의사결정권을 가지고 있다-과 당 내에서 간부로 일할 수 있는 피선거권을 주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한 것이다. 이런 일은 정당 사상 유래가 없었던 일이기에 개혁당 안에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그러나 사실 여기까지만 해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다. 대체적인 여론은 검토해봄직한 의견이라는 것이었다.

문제는 인터넷이었다. 인터넷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오가며 토론을 하던 도중, 소통의 상상력이 관습을 뛰어넘어버린 것이다. 급기야 ‘피투정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중학생이 ‘어떻게 청소년도 아닌 사람들이 청소년에 대한 정책을 입안할 수 있느냐’며 ‘청소년 정책은 당사자인 청소년들이 입안해야 한다’는 논지의 50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를 제출한 것이다. 이 문서가 올라오자마자 개혁당은 창당 이래 열 일곱번째 서버가 다운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전국에서 수만명의 중고등학생들과 청소년들이 개혁당 홈페이지에 의견을 개진하며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경향신문의 도올 김용옥기자는 ‘이 문서는 너무도 잘 쓰여진 것이어서 중학생이 썼을리 없다’며 아마도 누군가 작성해주었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문서의 진위 여부는 ‘피투쟁이’가 미디어몹 [헤딩라인 뉴스] 생방송에 출연해 자신의 의견을 조목조목 발표하면서 일단락되었다. 논쟁은 즉각 이 문서가 담고 있는 주장의 현실성과 부작용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반대쪽의 주장은 그런 논리라면 초등학생과 유치원생에게까지도 자기들에 관한 정책결정권(자기결정권)을 주어야할 것이라며 이 주장의 위험성을 부각시켰다. 또 만약 청소년들이 학교를 없애자는 정책을 내고 그것이 당론으로 결정되면 어쩔 것이냐고 우려를 표명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찬성하는 쪽은 어릴 때부터 아이들은 조금씩 자기결정권을 가져야 하며, 중고등학생 시기 정도가 되면 충분히 상황판단을 할 수 있고 자신들에게 적합한 어떤 정책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중고등학교 교과과정 정도는 이제 교육방송과 인터넷으로 다 해결이 가능하다며, 사실상 공교육이 무용해진 상황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논쟁은 세대간의 입장 차이로 갈라지기도 했다. 40대 네티즌은 ‘이제는 애들이 말 안듣는 걸 사회제도적으로 보장하자는 얘기냐? 우리 때는 어른들 의견을 무시하고 저런 주장을 제기하는 것 자체를 부끄러워했다’며 버릇없고 한심한 세대라고 꾸짖었다. 이에 대해 어떤 고등학생은 옛 문헌에도 ‘요즘 애들 버릇없다’는 말이 나온다며 ‘어른들은 왜 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냐?’고 반문한 뒤 ‘진화하지 못하는 것은 퇴화하는 수밖에 없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못하는 건 21세기에 맞지 않는 발상이라며, 나이를 무기로 의견을 묵살하는 것은 인터넷의 소통방식을 거부하는 비민주적 태도라는 것이다. 또 인터넷 때문에 아이들이 접하는 세상에 관한 정보도 어른들과 똑같은 수준이 되었기에 청소년들도 어른들과 비슷한 수준의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자, ‘누구 때문에 너희들이 인터넷을 맘대로 쓰게되었는데 그런 소리를 하냐’며 ‘인터넷 없이 자랐다고 무시당하는 게 억울하다’는 50대 아저씨의 감정어린 항변도 있었다.

논쟁은 치열했고 타협의 지점은 보이지 않았다. 개혁당의 일부 당권파들은 이 주장이 국민정서에 맞지 않는다며 총선을 앞두고 이런 쓸데없는 논쟁을 벌이게 되면 개혁당은 필패할 것이라고 논쟁 종식을 요구했다. 또 다른 사람들은 부안 핵폐기장 사건의 핵심은 주민 스스로 결정하는 ‘자치권’이었다며, 이번 사안도 자치권이라는 일관적인 잣대로 볼 것을 주장했다. 총선이 코앞에 있다고 중요한 현안을 비켜가다간 결국 당의 일정을 모두 정치일정에 맞추게 될 것이라며 ‘더디더라도 차분히’ 가야한다는 것이다.

개혁당 밖에서 한나라당이 갈라지네 마네 민주당과 합치네 마네 하는 사이, 개혁당 안에서는 서버가 두 차례나 다운되는 치열한 논쟁이 두 주동안 계속 되었다. 논란 끝에 머슴회의-개혁당은 일년 전에 대표나 위원장 같은 권위적 용어들을 청산하고 당의 임원들은 철저히 당원들의 의사결정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의도적으로 ‘머슴’이라는 용어를 도입했다-에서 하나의 중재안이 제시되었다. 중재안의 핵심은 지금까지 청소년들이 스스로 자기결정권을 가지고 정책을 만들어본 적이 없으니, 실제로 가능한지를 한번 증명해 보라는 것이었다. 즉 청소년들이 직접 현재의 대한민국의 청소년 정책들을 분석하고 문제점을 제시한 후 개선방향 및 대안을 정책으로 제시하면 그것을 가지고 이야기해보자는 것이다. 그것이 설득력을 가지면 개혁당은 개혁당의 청소년정책 입안권을 청소년들에게 넘기는 당헌 수정안을 주간투표장에 제출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새로운 청소년 정책을 마련하는데 참여하는 청소년들의 모든 활동 비용을 당에서 지원하고, 필요하다면 행정이나 법률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머슴 자문단’을 구성해 준다는 것까지 논의가 되었다. .

이 중재안은 즉각 토론에 붙여졌고, 결국 중재안을 주간투표장에 회부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여전히 게시판이 시끄럽기는 하지만 대체적인 여론은 이 중재안이 주간투표장을 통과할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이번 계기를 통해 국회의석과 자치단체장을 장악해야한다는 당권파들은 당장 총선을 준비할 시간을 벌기 때문에 이 안에 찬성할 것이고, ‘피투정이’의 제안을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찬반 여부를 넘어서 사실상 정책입안 자료를 만드는 과정까지 이야기가 진행되었다는 것에 만족해했다. ‘피투정이’를 비롯한 청소년들은 아예 정책입안 자료 초안작성 작업까지 진행을 하자며 즉각 정책연구단 공개 모집 작업에 들어갔다. 또한 이 작업에 대한 전국 청소년들의 의견을 보다 빠르게 수렴하기 위해 휴대폰으로 자기 의사를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이전에는 없던 로직의 시스템 설계 작업도 동시에 진행하기로 했다.

그 사이 나머지 당원들은 시군구동 단위의 지역자치단체장과 국회의원들을 선출하는 총선에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세대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당의 의견이 양분되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치달았지만, 한번 결정된 사안에 대한 실행은 아주 빠르게 진행되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과연 청소년들이 자기들에 관한 정책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궁금해하고 있다.

이렇게 개혁당은 총선준비체제로 들어가게 되었지만 사건의 파장은 날로 확대되어가고 있었다. 청소년들과 마찬가지로 의사결정과정에서 배제되어있던 노년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황혼의 방법’이라는 동호회를 결성하고 개혁당에 집단 입당하여 자신들에게도 똑같은 권한을 줄 것을 요구한 것이다. ‘황혼의 방법’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100대가 넘는 컴퓨터가 있는 개혁당 인터넷카페를 점거하고 그곳을 사무실로 사용하기로 선언했다. 이에 대해 개혁당 머슴회의는 당원들의 활동을 막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황혼의 방법‘에서 구체적인 요구사항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자‘는 입장을 제출했다.

되돌아보면 지난 2년 동안 인터넷 정당을 표방한 개혁당은 단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거의 한달 단위로 새로운 일들이 시도되었고, 전례없던 방법론들이 제시되었다. 사실상 개혁당의 지난 2년은 사실상 실험의 연속이었다. 그간 개혁당은 대표 및 지도부에 집중되어있던 당의 결정권한을 주 단위로 진행되는 주간투표장으로 대폭 이양하는 중대한 실험을 시도했었고 거의 매주 일요일 오후마다 있었던 주간투표장은 평균 70%의 진성당원 투표율로 성공적으로 안착되었다. 가끔 말발 좋은 정치사기꾼들의 감언이설에 속아 얼토당토안은 주장이 가결되어 혼란을 겪은 적도 있었지만, 당원들의 뜻이 모이면 당의 머슴들은 그대로 집행한다는 원칙을 충실히 수행한 결과 개혁당은 초기 3만여명의 당원이 30만으로 늘어나는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했다.

이제 개혁당은 창당이래 두 번째의 큰 실험을 시도하는 중이다. 만약 이번 실험까지 성공한다면 개혁당은 시군구 마을 단위까지 완변한 자치제를 추구하는 것에 이어 각각의 세대들이 자신들의 삶의 조건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는, 보다 직접민주주의에 가까운 운영시스템을 구현하게 될 것이다.

2004년 선거를 앞두고 개혁당의 광풍이 몰아치고 있다. 인터넷 정당을 표방하며 2004년 개혁당 돌풍을 선언했던 개혁당 창시자 Y씨의 예언은 이렇게 하나씩 실행되고 있는 중이다. 개혁당이 앞으로 어떤 방향을 가게 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개혁당이 개혁당 당원들의 의사를 정확히 반영할 것이라는 전제하에서, 그 방향은 대한민국 사람들이 바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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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하는 마음에 썼던 가상리뷰입니다.
아마도 얼마안에 인터넷에 기반한 직접민주주의 정당이
생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성공의 관건은 얼마나 충실하게
직접민주주의를 시행하느냐에 달려있겠지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2004/03/18 22:27 2004/03/18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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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의 기억은 오래 지속된다.


개혁당과 인터넷 그리고 유시민을 되새기며...

한 순간 정치의 한복판에서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던 정당이 있었다. 스스로를 인터넷 정당, 네티즌 정당이라고 부르던 개혁당 말이다. 개혁당을 처음 주창했던 유시민씨는 당당하게 선언했었다. 2004년 총선에서 개혁당이 돌풍을 일으킬 것이라고... 그러나 지금 개혁당은 사분오열 되었다. 유시민씨는 자기가 만든 당에서 자기와 함께 했던 사람들에게 ‘동아리를 할 것인가?’라는 논리를 들이대며 결국 당을 해체시키고 나가버렸고, 사무집기와 도메인 소유 문제를 둘러싼 법정다툼을 지저분한 싸움의 흔적으로 남겨놓았다.


2002년을 돌아보며...

2002년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블록버스터급 영화 같았다. 새해 벽두부터 노사모가 만들어낸 정치적 이변과 월드컵 거리축제로 폭발한 잠재적 열망들을 밑바탕에 깔고, 대선정국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들였고 또 많은 사람들을 관중석에서 그라운드로 뛰어들게 만들었다. 전국에 깔린 초고속인터넷망을 타고 눈덩이처럼 불어난 인터넷 담론의 폭발 그리고 오프라인으로 진출한 네티즌들의 활동, 혁명을 바란 것도 아니었지만 어쨌든 작은 무엇이라도 바꿀 수 있을 거라는 희망에 울고웃었던 개인들의 욕망들. 2002년은 한마디로 욕망이 흘러넘치던 한 해였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 거대한 욕망들에 감동을 받았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욕망들 속에서 희망을 느꼈을까?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은 그 욕망들을 이용하고 싶었을까?

뜨거웠던 6월 거리축제가 끝나고... 쓰레빠를 신고 히딩크 옆에서 히죽거리는 사진을 찍었던 이명박의 아들을 보았을 때, 이미 경선에서 결정된 후보를 끌어내리려 온갖 술수를 부리던 집권여당의 행태를 보았을 때, 우리가 경험했던 격정적 감동들은 잠시 한국이란 저급한 현실을 떠나 신기루를 본 것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적어도 정치적으로는 지극히 ‘한국스런’ 상황에 빠져있다는 현실을 깨닫고 말았지만... 그렇지만 한번 폭발했던 욕망이 다지 잦아들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게 넘쳐흐르는 욕망들을 추스릴 곳을 찾지 못하고 어딘가 돌파구가 없을까, 어딘가 탈출구가 없을까 고민하던 사람들에게, 무언가 새로운 다른 방법은 없을까 모색하던 사람들에게 유시민씨는 혹할 만한 제안을 했다. 먼저 그는 칼럼리스트로서 절필선언을 했다. "최근 민주당은 국민경선의 취지를 부정하고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을 스스로 짓밟고 있다.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오는 민주공화국의 시민으로서 묵과할 수 없는 사태이다.(유시민, '배반당한 국민경선제', 2002년 7월 31일)“라고 이야기한 후, 8월 2일 ‘공화국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자신이 운영하던 시사카페를 닫는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곧 ‘개혁적 국민정당’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인터넷에 기반한 개혁적 국민정당?


8월 29일 ‘개혁적 국민정당 창당 제안 국민토론회’를 개최한 후 9월 17일 63빌딩에서 약 1천5백 명이 모여 개혁당 추진위원회를 공식 발족했다. 추스릴 곳 없던 욕망들이 모여들고, 불과 석달만인 11월 16일 자발적인 당비를 납부하는 2만여명의 진성당원들과 함께 개혁당이 창당되었다. 한나라당 소속이던 김원웅의원이 영입되었다. 그리고 거기에 온 몸을 투신했던 이름없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필자의 주위에도 그 안에 뛰어든 사람들이 있었다. 당비를 내고 게시판에 글을 쓰고 위원회에서 활동을 하고 문제를 제기하고 등등...

무엇보다 필자의 관심을 끌었던 건 인터넷 정당이라는 구호였다. 이미 미래소설과 미래학자들로부터 인터넷 민주주의니 참여민주주의니 이런 얘기들은 많이 있었지만, 아직까지 인터넷정당이란 것을 전면에 내세운 정당은 없었다. 유시민씨가 표방했던, 인터넷을 이용해 정당 내 참여민주주의를 구현한다는 것은 상상의 나래를 자극했다. 이미 인터넷에 기반한 민주주의를 뒷받침해줄 기술적 시스템은 몇 년 전부터 가능한 상태였다. 불과 몇백만원의 돈으로 수만명이 한꺼번에 접속하여 토론할 수 있는 서버를 만들어주는 하드웨어와 전국에 기가급으로 깔려있는 초고속 네트워크. 수없이 많은 작은 소모임과 토론장들을 가능하게 해주는, 이제는 누구라도 만들 수 있고 운영할 수 있을 정도로 보편화된 게시판 기술. 이슈가 되는 사안들이나 당원들의 관심도가 높은 사안들을 자동으로 뽑아올릴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 기술. 회원 인증에 기반하여 투표할 수 있는 전자투표 관련 기술 등등. 더구나 이미 한국의 게시판문화는 그것이 의견교류와 정보공유와 의사결정에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몇 번이고 증명한 상황이었다.

사실 기술적으로는 아무런 미비점이 없다. 흔히 의사결정권이 집중되는 것에 대해 긴급한 사안과 시급한 결정의 필요성 때문에 의사결정권한을 대표와 같은 지도자급 사람이 행사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간접민주주의는 인간사회에 어쩔 수 없는 한계들이라고 이야기해왔지만, 적어도 인터넷에서는 이것을 변명으로 내세울 수 없게 만드는 기술적 문화적 시스템이 준비되어 있다. 소위 대표나 집행위원회나 혹은 당무회의와 같이 정당의 고전적인 의사결정기구가 맡고 있는 의사결정권한을 ‘주말투표’나 혹은 ‘일요투표’에 넘기는 것도 가능한 상황이고, 보다 더 긴급한 사안이라면 당원들에게 문자메시지로 ‘긴급투표’를 위해 대기해달라고 주문할 수도 있다. 더 나아가면 컴퓨터 앞에 앉아있지 않아도 핸드폰으로 의사결정을 표현할 수 있는 날이 조망간에 도래할 것이다. 이미 민주주의를 촉진시키기 위해 활용할 n 있는 기술들은 널려있다.

컴퓨터가 도입되고 인터넷망이 깔리면서 우리가 의사를 소통하고 정보를 교환하고 의견을 공유하고 나아가 함께 공동의 목표를 위해 행동할 수 있는 범위는 이제 전국적인 수준이 되었다. 좁은 마을의 단위, 넓은 광장과 노예제에 기반한 시민들의 시간적 여유로 대표되는 그리스적 직접민주주의는, 이제 한국에서는 전국단위로 구현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개혁당에 참여했던 수만명의 평범한 개인들, 자신이 힘들여 번 돈을 내며 정치를 바꿔보고자 했던 평범한 당원들은, 자신의 일상을 모조리 빼앗겨버릴지도 모를 그 피말리는 현장에 자신을 여유시간을 모두 투자할 각오들이 되어있는 사람들이었다. 개혁당 게시판에는 인터넷 정당에 걸맞는 시스템을 만들자며 상당히 구체적인 제안을 던지는 사람들도 많았다. 시스템이 갖추어지고, 그 시스템을 기꺼이 이용할 사람들이 준비되어 있다면, 사실 부족한 것은 없는 상황이었다. 단지 시행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만이 남아있을 뿐.

인터넷에 기반한 정당이라... 이런 저런 상상의 나래를 펴보았던 필자 역시 그때는 어떤 근거없는 기대감에 혹시나 하는 가능성에 내심 기대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인간 유시민에 대한 개인적인 신뢰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그 시도가 만들어낼 어떤 효과들이 궁금해서 개혁당 홈페이지(http://www.vision2002.org)에 무료회원으로 가입을 했을 때, 필자는 로그인을 할 때마다 번번히 실소를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인터넷 정당을 표방한 개혁정당은 홈페이지조차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었다.


모름지기 인터넷 정당이란...

인터넷 정당의 장점은
거리상관없이 한 공간에서 요구와 질문에 대한
주체즉이나 상대의 즉각 반응으로 그 대답이나 해결책을 알 수 있다는 점이다.
개혁당은 명실상부한 인터넷정당을 자부하는 정당이다.
바쁜 당원들은 인터넷을 통하여 개혁당의 상황을 파악하고
자신들의 입장과 의사를 개진한다.
하지만,
개혁당의 상황이 변경되면 홈페지 내용도 시스템도 변경되야 즉각반응이다.
예컨대, 문성근씨가 집행위원이 아니라면,
[집행위원회]게시판에서 바로 삭제해야 즉각 반응이다.
하지만, 그대로 있다면 이것은 당나라 정당이다.
집행부에 대한 당원들의 요구와 불만이 있다면
이에 대한 집행부의 답변과 대응이 있어야 즉각 반응이다.
인터넷 공간을 통하여
집행부와 당원들간의 합의가 이루어져야 즉각 반응이다.
설문조사 등 수단은 얼마든지 있다.
단지, 집행부의 의지대로 시행되지 않을까 걱정해서
집행부가 하지 않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인터넷정당이 아니라,
겉만 인터넷정당으로 포장한 몇몇 대가리들의 추진정당이고 기구일 뿐이다.
당원들의 의사무시이고 인격모독이다.
정당이 파토날 국면으로 몰고가는 형국이다.
2003년 5월 어느날 개혁당 게시판에서...


이미 개혁당이 공식적으로 해체되는 6개월 이후의 상황을 예상한 듯한 이런 비판들은 어느날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었다.

개혁당 지도부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의 마인드가 전혀 인터넷정당에 적합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아마도 워드에서 글을 작성해서 오마이 같은 곳에 올리고 이메일 주고 받고 그런 정도를 인터넷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인 것 같다. (2002년 12월 어느날 개혁당 게시판에서)

이미 정당이 만들어지고 한달도 되지 않아서 개혁당 게시판에는 개혁당 지도부들에 대한 불만과 비난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위와 같은 상황은 유시민에 의해 개혁당이 해체될 때까지 계속 되었다. 불러도 불러도 대답없는 집행위원회와, 어느날 갑자기 홈페이지에 보여지는 5명의 전국집행위원회의 결정사항과 일방적인 통보. 그리고 그 일방성을 비판하는 목소리와 그 목소리를 들어야 할 사람들의 침묵.


개혁당에 개혁은 없었다!

한나라당에서 개혁당으로 당적을 바꾼 김원웅 의원은 당원들의 투표가 아니라 5명의 전국집행위원회에 의해 개혁당의 대표가 되었다. 인터넷으로 클릭하는 투표가 힘들어서가 아니고 당원들의 투표참여율이 저조해서도 아니었다. 단지 개혁당 게시판에서는 한나라당 소속이던 김원웅의원이 대표에 적합한가에 대한 논란이 있었을 뿐이었다. 개혁당 전국집행위원회는 당원들의 의사를 반영하기는커녕 그 목소리를 막아버리고 서둘러 김원웅을 대표로 임명하였다. 엄청난 논란 끝에 당원투표로 추인하는 과정이 있기는 했지만, 이것은 참여민주주의를 구현한다던 개혁당의 애초 취지에 대한 개혁당 전국집행위원회의 폭력이었다.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개혁당에서 떨어져나갔다.

‘민주당과의 선거공조는 없다’던 유시민이 민주당과의 연합공천으로 국회의원 뱃지를 달았을 때 또 많은 사람들이 개혁당에서 떨어져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2002년 11월 당비 1만원 이상을 기꺼이 내는 진성당원 2만여명으로 시작한 개혁당의 당원수가, 개혁당을 해체하고 열린우리당으로 입당하자는 안건을 표결에 붙인 2003년 11월에는 7천여명으로 줄어버렸다. 2만여명으로 시작한 개혁당은 불과 3천9백62명의 찬성으로 해체되고 말았다.

굵직한 사건의 기록은 이러하지만, 개혁당 게시판을 다시 되돌아보면 개혁당이 1년 동안 한 일이라곤 개혁당 지도부와 개혁당 평당원들간의 싸움이 전부였다. 개혁을 외치며 만들어진 정당에서 개혁과제는 한번도 제대로 논의된 적이 없었다. NEIS와 부안사태와 이라크파병문제와 노무현대통령의 파업현장에 대한 공권력 투입에 이르기까지... 개혁당은 한번도 자신의 목소리를 낸 적이 없었다. 유일한 성과는 당원수를 줄여줄여가다 급기야 당을 해체하고 더 큰 당에 흡수통합된 것 뿐이다.

남은 것은 한 때 정치적 변화의 가능성에 가슴이 설레였던, 이제는 보이지도 않는 만 사천여명의 개미당원들의 흔적과, 열린우리당으로의 흡수통합을 거부하고 다시 개혁당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찬란하게 빛나는 유시민의 금뱃지뿐.

열린우리당을 개혁하겠다며 열린우리당으로 들어간 유시민의 최근 행보는 차치하기로 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넘어갈 수 없는 건, "몇 달 하고 말 정당이 아니다. 앞으로 2004년 총선에서 원내 제1정당을 바라보고 있다"고 공언하며 사람들을 끌어들였던 그가 2만명의 자발적인 열정을 단지 M&A의 대상으로 취급했다는 사실이다.

“지금 이미. 개혁당이라는 작은 정당 만들어서 모델하우스 구축해봤고. 그 다음에 엠엔에이를 한 거죠.” (2004년 2월 27일, 한겨레신문)

개혁당 지도부가 어떻게 그렇게 일방적일 수 있었는지를 이해시켜주는 대목이다. 물론 그 M&A의 효과에 대해서 그는 “엠엔에이 결과 세력은 저쪽이 압도적으로 크지만 시스템은 개혁당쪽에 근접하고 있다. 이게 성공적인 엠엔에이죠”라고 부연설명을 했고 여기서 말하는 개혁당의 시스템이란 “정당 지도부 전부 당원이 뽑‘는 것이라고 부연설명을 했지만, 정작 그는 이번 총선에서 지구당 당원들에 의해 선출되는 상향식 공천이 아닌 열린우리당 지도부의 의한 낙하산 공천을 말 한마디 없이 받아들였다.

혹시나 유시민이 ‘정치란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이라고 말을 한다면, 유시민 당신이 개혁당에 끌어모았던 사람들 대부분은 ‘정치란 상황에 따라 변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믿고 싶었던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럼 왜 애초에 “정치는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이라고 말을 하지 않았던가? 결과적으로 유시민의원은 그 뜨거웠던 2002년 끓어올랐던 2만여명의 열정을 상대로 사기를 친 것이다. 적어도 개혁당과 관련해서는 유시민은 자기가 한 말을 그대로 다시 되돌려받아야 한다.

"최근 민주당은 국민경선의 취지를 부정하고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을 스스로 짓밟고 있다.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오는 민주공화국의 시민으로서 묵과할 수 없는 사태이다“
(유시민, '배반당한 국민경선제', 2002년 7월 31일)


인터넷의 기억은 오래 지속된다...

사실 인터넷만 아니었어도 유시민은 필자의 기억 속에 없었을 사람이다. 내가 한참 인터넷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 때 인터넷정당이라는 거창한 구호만 들고 나오지 않았어도 그의 일에 관심을 가지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시민의 인터넷 정당론이 필자에게 ‘인터넷을 최대한 활용했을 때 가능한 정당형태’에 대한 상상력을 불러일으켰을 때 그와 개혁당의 행보에 눈길을 두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 기억은 이렇게 기어이 글로 써야할 만큼 오래 갈 것이다.

힘있는 사람들은 군중들은 빨리 잊어버린다고 했다. 식자들은 한국인의 근성은 냄비와 같아 쉽게 끓고 쉽게 식는다고 했다. 그러나 개인의 기억이 언제 잊혀진 적이 있었던가? 개인의 기억이 잊혀지는 것이 아니라 그 개인의 기억을 공유할 사회적 기술적 장치들을 갖지 못했던 것 아니었던가? 개인의 기억이 망각되고 잊혀지는 것이 아니라, 그 개인의 경험과 정보를 나누지 않았던 혹은 모르고 있었던 다른 많은 사람들 속에 희석화되어 묻혀진 것 아니었던가?

적어도 인터넷에서는 상황이 달라진다. 개인의 기억은 게시판에 작은 글씨로 기록되면서 집단의 기억이 된다. 개인의 판단이 거대한 집단의 판단에 한 점의 모자이크로 찍혀 집단의 공통된 기억을 만들어낸다. 개인의 기억은 쉬이 묻혀버리지만, 인터넷에서는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한때 서울시장까지 출마했던 이가 어느 순간 복당조차 허용되지 않았던 이 전에 없는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정치인들은 여전히 ‘한국인들은 쉽게 잊어버린다’고 생각하는 모양하다.

김민석이 ‘김민새’로 오래 기억되듯 개혁당의 사기꾼 유시민에 대한 필자의 기억도 이렇게 인터넷에 남아 오래 지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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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02 12:28 2004/03/02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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