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월 필리핀의 에스트라다 정권은 휴대폰 문자 메시지로 무너졌다. 언론까지는 통제했지만 핸드폰 문자는 통제하지 못했던 에스트라다 정부는 문자메시지로 시위소식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대통령 관저 앞으로 모여든 수만명의 사람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만 것이다. 당시에도 시위가 커지기 전까지 언론에서는 시위 소식이 거의 나가지 않았었다고 한다.
실시간을 가능케 하는 새로운 미디어를 활용한 사회운동은 필리핀이 처음이 아니다. 그 이전에 1999년 시애틀에서 있었던 WTO 체제 반대 시위대들도 비슷한 방법을 활용했다. 시위대들은 회의 장소를 봉쇄하기 위해 휴대폰으로 연락을 주고 받고, 거리에서 노트북으로 무선인터넷에 접속하여 실시간으로 시위정보를 주고받으며 행동을 조율했다. 결국 그들은 회의 장소를 봉쇄하였고, 당일날 예정되었던 WTO 세계 각료회의를 무산시켰다. 일부 국가의 정상들이 교통이 막혀 회의 시간에 회의장에 나타나지 못한 것이다. 이것은 수만명의 시위대가 경찰의 엄청난 봉쇄에도 불구하고 서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거리 곳곳을 누비며 행동을 조율한 결과이다.
실시간 커뮤니케이션 도구를 활용해 오프라인에서 실시간으로 서로의 행동을 조율하는 집합적인 움직임은 이미 한국사회에서도 한번 있었다. 97년 총파업 때 대규모 집회를 하기 위해 모여들었던 노동자들은 정부가 집회 장소를 봉쇄하자 실시간으로 핸드폰을 통해 집회 장소를 연락받고, 다른 장소로 움직였다. 경찰은 그날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정보를 주고 받는 속도 그리고 그 정보에 따라 움직이는 속도가 경찰보다 빨랐기 때문이다.
이렇듯 오프라인에서 개인들이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며 실시간으로 행동을 조율하는 것. 인터넷과 핸드폰이 아니라면 불가능했을 일들이다.
그리고 바로 정확히 그 현상이 한국에서 다시 재현되었다. 문자로 실시간 커뮤니케이션 하는 이들. 인터넷으로 온갖 정보들을 섭렵하고 토론하고 판단한 후, 오프라인에서는 문자로 서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움직이는 사람들.
1999년의 시애틀, 2001년의베트남과 지금이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 세대는 그런 기술을 처음 경험한 것이지만, 지금 한국의 네티즌들은 일상적으로 그런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언제든지 네트워크에 접속하고 소통할 수 있는 기술과 그것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줄 아는 사람들.
한번 집회 장소를 봉쇄해보라. 어떻게 될 것인가? 아마도 이들은 처음에는 봉쇄된 공간에 당황하겠지만, 그 다음번 집회에서는 아마도 순식간에 정보를 공유하고 비어있는 다른 공간을 점령할 것이다. 도저히 경찰들이 예측할 수 없는 형태로 군중들이 움직일 때, 봉쇄나 저지는 무력화되고 만다.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 움직임의 속도가 이쪽이 더 빠른데 어떻게 봉쇄할 수 있단 말인가?
네트워크에 연동하여 움직일줄 아는 사람들, 실시간 정보 공유와 수평적인 토론, 적어도 토론 공간에서는 나이도 남녀도 불문하고 같은 위치에서 토론할 줄 아는 훈련된 사람들... 오프라인에서는 휴대폰과 인터넷으로 실시간으로 정보를 확인하며 움직일 줄 아는 사람들. 이들이 바로 2008년에 한국 사회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네트워크화된 개인들'이다.
특히 80년대에 태어나 초등학교부터 컴퓨터를 사용하기 시작한 지금의 중고등학생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네트워크 세대이다. 우리는 바로 그 네트워크 세대가 우리 사회 전면에 등장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다.
고립된 소규모 집단 속의 개인이 아닌, 전체 공동체와 연결된 '네트워크화된 개인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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